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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를 살리신 어머니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07 조회수837 추천수9 반대(0) 신고

 

 

 

                      나를 살리신 어머니


   목마르다. 극심한 갈증에 한 밤중에 일어나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들이켜 보았지만 이 갈증은 사라질 줄을 몰랐다. 사제 서품을 받은 지 2년, 수도회의 첫번째 사제로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살아가던 그 시절에 나는 지독한 갈증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느 것도, 어느 누구도 나를 완전히 채워주지 못하는 시간들 속에서 서서히 지쳐가고, 내 마음은 갈라진 논바닥처럼 푸석 푸석 메말라 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내 안의 그 큰 빈자리는 생명이 없는 사막과도 같이 나를 모래 폭풍 속으로 걸어가게 만들었다. 마지막이었다. 내 꿈의 마지막이었고 내 이상이 산산 조각나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픈 그 밑바닥에서 마지막으로 나는 하느님 앞에서 절규했다. “이것이란 말입니까? 겨우 이 모습을 보여주시려고 나를 이 곳으로 인도하셨단 말입니까?”


    더 이상 이런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무의미했다. 젊은 사제로서의 열정과 꿈은 하나씩 부러져 버리고 앙상한 줄기만 남은 볼품없이 썩은 나무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그랬었다. 신앙의 위기, 성소의 위기, 삶의 위기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부터 오는 것이었다. 내 마음이 채워지지 않으니 그것을 밖에서 찾게 되고, 다른 사람과 사물에 그것을 기대하게 되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니 또 다른 상처를 받게 되는 악순환 속에 갇히는 것이다.


   바로 그 시절 내 영혼과 마음은 지독한 사슬에 묶여버리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이 목마름을 안고 성체 앞에 나아갔고 하느님 앞에서 울부짖었다. “주님, 제가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려고 한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이 공동체만을 생각했고,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


   그분은 내게 물으셨다. “최선이 무엇이더냐?” “예, 최선은… 가장 높은 선, 완전한 선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높고 완전한 선은 무엇이더냐?” “세상에서 가장 높고 완전한 선은… 그 선은… 하느님 당신이십니다.” “그렇다면 너에게 최선 은 무엇이었느냐?” 그 순간 내 안에서 와장창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최선을 다해 살겠다는 내가 이 세상의 최선은 하느님 한 분이심을 잊어버리고 내 스스로가 최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의 자아와 계획이, 나의 활동과 능력이 최선이 되어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해 버린 것이다. 자아의 성공과 만족을 위해 한 켜 한 켜 쌓아 왔던 탑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밤 하느님은 나를 사정없이 넘어뜨리셨고 사제의 이름위에 견고하게 쌓아왔던 자아의 성벽을 허물어뜨리셨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사랑이었고 자비였다. 나를 넘어뜨리신 것도, 내 계획과 노력을 수포로 만드신 것도, 열정으로 바친 시간을 허무로 돌리신 것도 이 모두가 그분의 넘치는 사랑과 자비였다.


   그 순간에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며 지켜온 것이 하느님이 아닌 ‘나’였음을 깨닫는 은총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나 오랜 시간 헛된 곳에서 힘을 소진한 터라 내 영혼과 마음을 묶어버린 이 사슬에서 어떻게 풀려나야 할지를 알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이었고 중풍병자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나에게 하느님은 무한하신 자비를 입혀주셨다. 스스로 걷지 못하는 중풍병자를 주님 앞에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던 주님은 나의 눈을 뜨게 하시고 내적으로 마비된 채 누워있는 나를 일으켜 세워주셨다.


   그것은 나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나를 위해 희생하시고 하느님 앞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나를 살려내신 분의 믿음 때문이었다. 그분은 내 어머니이시다. 내 어머니는 내 삶의 모든 것에 함께 계셨다. 내 교만과 어리석음 가운데 당신의 모습을 기억조차 하지 않았던 못난 아들의 삶을 위해 감실 앞에서, 제단 옆에서 회개와 보속의 삶을 살고 계셨다. 그분의 희생과 사랑이 나를 예수님께로 인도하였다. 그 분이 나를 살리셨다. 내 어머니이신 그 분의 이름은 마리아시다.



   예수님은 당신 사랑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다시 나에게 내어주셨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길로 모든 영혼들을 이끌어 오라고 요한을 대표로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 주신 성모님께서는 내 영혼의 어머니시다. 성모님을 영혼과 마음의 어머니로 다시 받아들이는 순간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오랜 시간 내가 꼭 움켜쥐고 있었던 손을 바라 본 것이다. 집어삼킬 듯이 몰려드는 인생의 파도 앞에 살고 싶어 무엇인가를 붙잡았는데 그것들은 나를 살려주지 못하였다.


    가장 중요한 닻을 잡지 않았던 것이다. 배가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잡아주는 닻을 놓아버린 것이다. 배가 뒤집혀지는 위험의 순간에 내 손에 든 헛된 것들을 버리고 그 밧줄을 다시 잡게 되었다. 바로 어머니와 함께 바치는 묵주기도가 신앙의 밧줄이다. 이 밧줄은 하느님과 나를 굳게 연결시켜주는 역할과, 내 안에 있는 모든 악을 묶는 역할을 한다.


    교만으로 잊어버렸던 묵주 기도를 다시 시작하려 하니 그토록 달콤했던 기도가 처음 얼마 동안은 입안의 가시처럼 성가시게 느껴졌다. 성모님은 나와 함께 이 기도를 바쳐 주셨다. 묵주기도는 내가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성모님께서 나와 함께 성삼위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임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내 영혼과 마음은 빛의 기도인 묵주의 밧줄을 잡고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자아의 사슬 속에 물기 없이 메말라가던 내 영혼은 어머니의 부드럽고 따스한 사랑과 은총의 빗줄기를 받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 품고 계시는 사랑과 위로는 내 영혼을 적시고 내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병든 내 육신의 세포 하나 하나를 새롭게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진정한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를 부드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깨우쳐 주셨다. 세상 사람들은 많은 일을 해야 좋은 결과를 거둔다고 생각하지만 하느님의 일은 그렇지 않다. 이 모든 일의 결과는 하느님의 몫이고 그 열매를 맺어 주시는 분도 한 분이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어머니 마리아는 지금도 나를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훈련시키시고 교육하신다. 나의 한 생을 하느님의 사제로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신다. 그리하여 내게 주어진 사제직의 의미를 성모님의 사랑으로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죽었고 다시 살아난 감실 앞에서 이런 고백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나를 살리셨으니 이제는 제가 어 머니의 성심을 위해 죽겠습니다.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이 하나임을 온 세상 영혼들 에게 알려야 하며, 어머니의 성심 안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구원의 샘이 있음을 증거해야 함을 아나이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이신 예수 성심과 영원히 메마르지 않는 어머니 마리아의 성심이 나를 살리셨다. 그리고 하나가 된 두 분의 성심을 통해 이 세상의 모든 영혼들이 구원과 생명을 얻기 위해 이 죄 많고 부족한 영혼을 사랑으로 살려내셨으니 남은 한 생을 그 사랑을 위해 살아갈 은혜를 주님께 감히 청해본다.


   주님의 사랑과 자비는 찬미를 받으소서, 아멘.


                          - 강요셉 신부 / 구속주회

                     
                         

                     

                           영원에서 영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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