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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루가복음 21,1-4 묵상. 가난한 과부의 봉헌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07 조회수630 추천수1 반대(0) 신고

    본문 :

  "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 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성전에 가셨다가, 가난한 과부가 렙톤 두닢을 넣는 것을 보시고 기쁨에 가득찬 목소리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신다. 여기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잘 새겨 들어야 한다.

 

   이 절 바로 앞에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들은 남들에게 드러내 보이려 짐짓 거룩한 체하는 행동을 하고, 긴 예복을 입고 다니고 인사 받길 좋아하며, 기도만은 남에게 보이려고 오래한다. 그리고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는다고 예수님께서 질책하셨다. 예수께서는 겉치레를 몹시 싫어하시지만 신심을 과시하는 겉치레를 특히 경멸하신다.

        

   그녀는 가지고 있던 돈의 전부인 작은 동전 두닢을 헌금궤에다 넣었다. 가난한 과부였기에 자신을 부양해 줄 남편이 없었고, 거렁뱅이로 살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그 두닢의 맆톤은 작은 돈이긴 하지만 자신의 생명과도 같이 귀한 것이었다. 즉 과부는 자신의 생명을 봉헌한 셈이다. 이 작은 동전 두닢은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육체와 영혼을 표상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 그녀에겐 육체와 영혼밖에 바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가진 것 전부를 바친 까닭에 그녀는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것을 바친 셈이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진정 가르치시고자 하는 의도를 깨달을 수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기대하고 계시는 봉헌물은 우리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선물이 아니다. 우리의 내밀한 곳에서 나오는 것, 곧 자기를 바치는 봉헌이라는 가르침이다. 이 봉헌물은 우리가 하느님께 바칠 수있는 다른 모든 것보다 훨씬 귀중하다. 우리가 지닌 넉넉한 여분이라 부를 수있는 그 어떤 것도 하느님 앞에선 무가치하다. 우리 스스로 부유하다고 생각할 뿐 아닌가? 재산? 보물? 재능?명예?용모?등 그 무엇 하나 우주상에 널려있는 그 어떤 것과 비교하여도 내세울 게 없는 것 아닌가?

 

    신앙 생활에 있어도 우리가 행하는 교리 교육, 전도, 가르침, 봉사, 친목과 같은 능력도 모두 그분이 주신 자연적 선물이다. 방언을 말하고, 기적을 행하고, 치유의 은사를 행하는 능력도 모두가 그분이 주셔서 받은 선물 아닌가? 사실 이러한 것들은 누구라도 넘치도록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라서 특별히 받았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자신이 특별히 하느님께 사랑을 더 받아 그런 은사를 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여기서 그 과부가 등장한다.  그녀는 오로지 하느님 이외에는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 그런 삶을 상징한다. 그녀는 지금 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녀에게 있는 것이란 가난과 외로움과 연약함, 극도의 궁핍 뿐이다. 

 

   욥이 마지막에 잿더미 위에 앉아서 하느님께 바치는 뉘우침의 찬양(욥기 42,2-6)도 이것이다. 그가 전에 이웃에 베풀었던 선행, 그의 인간적 업적, 그가 받았던 넉넉한 풍요는 이제 모두 자랑할 게 없는 티끌이었다는 깨달음이 바로 그것이다.

 

   하느님이 즐겨 받으시는 것은 나의 봉헌이지그 어떤 "여유 분" 도 아님을 이제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봉헌하지 않는 한 그분이 즐겨 받으실리가 없다.  그분은 부족함이 없는 분 아닌가? 무엇을 보태 드린다는 것인가?

 

  그분은 오로지 내 몸만을 기다리고 계시다. 나의 영혼의 찬양을 즐겨 받으신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느님께 자신의 전존재,내밀한 자아를 바치라는 것이다. 여기에 비하면 다른 종류의 섬김은 쉽다. 그야말로 여분이니까.... 또 채워 주시니까.

 

   우리의 존재라는 선물에는 우리의 심각한 고통과 나약함과 죄스럼이 모두 포함 되어 있다. 우리의 영적 빈곤에서 나오는 이 같은 예물 이야말로 현세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그런 선물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선물을 하느님은 더 즐겨 받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을 섬기면서 보여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는 우리가 그래도 꾸준히 당신을 섬길 때 기뻐하신다. 예수께서 성전 헌금궤에 오셔서 사람들을 지켜보신 이유도 이같이 가난한 과부가 와서 자신의 작은 선물을 집어 넣는 모습을 발견하고 기뻐하시 위함이다. 우리의 봉헌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바를 듣는다면 우리가 주님께 봉헌해야 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내안에 계시는 성령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야 우리는 진정 가난해 질 수 있다.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아니며, 그저 죄인일 뿐이라고 고백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선물이며 자랑할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있다.

 

  오로지 성령의 기도만 그분이 즐겨 받으시는 분향인 것을, 남 몰래 드리는 침묵만 그분이 즐겨 받으시는 흠숭인 것을 이제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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