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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눈물 한방울을 찾아 2. . . . . . . [정채봉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08 조회수705 추천수11 반대(0) 신고

 

 

 

 

그해에는 장마가 길었다.

서부 전선 철책가에 있는 나에게 사단 사령부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는 전갈이 왔다.


잘 들리지 않는 ‘이이팔 전화기’로부터 간신히 알아들은 내용은 아버지가 사단 사령부 면회실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하도 믿기지가 않아서 거듭거듭 되풀이해 확인을 했다.


“누가요? 

 아버지라고요?

 작은 아버지가 아니고 아버지란 말입니까? 

 예, 내가 정채봉 맞습니다. 

 그쪽한테 물어 보세요.

 고향이 승주인 정채봉 면회를 왔냐구요?

 예, 아버지 일본에 계세요... 그 아버지시랍니까?”


이상하게 썰물처럼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걸상에 주저앉아 창밖을 보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동료들이 나서서 외출증을 끊어 오고 ‘카키복’을 다려 오고

했으나  나는 아버지를 면회할 자신이 서지 않았다.


아버지를 만나면 사화산이 활화산이 되어 터질 것도 같았고,

또 전혀 초연하게 죽은 나무를 보듯 하게 될 것도 같았다.


나는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전투복 복장으로 총을 찾아 메고

철책 근무를 하러 나갔다.

초소에 서니 멀리 건너 북쪽의 송악산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내에 싸여서 아득해 보이는 먼 산 능선을 바라보면서

‘아버지’라는 말을 혀 위에 올려보았다.

마치 음식물 속의 돌처럼 받치기만 하는 단어를 말이다.

얼마 뒤에 나는 대대장의 호출을 받았다.


평소에 부하이기보다는 막내아우 같다며 나를 아껴 주던 대대장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놈아,  아버지가 일본에서, 그것도 이십 몇 년 만에 아들을

보겠다고 나왔는데 만나지 않겠다니 그 이유가 뭐냐?”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만나는 것보다는 만나지 않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 격한 감정으로 만나더라도 울고 나면 다 씻어질

 거야.  아버지와 자식 간에는 피가 부르는 법이야.”

 

“자식의 피가 불렀는데도 십팔 년간이나 나 몰라라 하는 아버지 

 의 피가 있었으니 문제지요.

 아무튼 저는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로 대대장님께서 강권해 내보내신다면 저는 탈영해서 돌아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마침내 나는 임진강 물이 홍수로 넘쳐 나서 나가지 못한다는

핑계로 아버지를 피했다.


그런데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술을 마셨는데도 취하지 않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릴 때마다 엎드려 이마를 침상에다 콩콩 찧곤 했다.


‘아버지의 피가 정말 부르고 있는 것일까?  

내 의지하고는 관계없이 내 피가 응답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되자 고통스러웠다.


이튿날 날이 밝자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아버지의 면회를 거절했다는 말을 듣고 할머니가 충격을

받아 쓰러지셨다는 것이었다.


나는 동생의 그 전갈이 나를 끌어내기 위한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휴가를 신청했다.

아니, 내 마음 속에서 이미 그런 구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와 아버지의 상면은 생각보다도 훨씬 간략했다.

나는 할머니 옆에 앉아 있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러나 전혀 생소한 아버지 앞에 절을 하다 말고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고,

아버지는 계속

“할 말이 없다.”고만 할 뿐이었다.


그 뒤로 아버지는 삼 년에 한 번 꼴로 두어 번 더 내왕하시다가

내가 장가들어 첫 아이를 얻던 해에 일본에서 그 삶을 마치셨다.


작은 아버지로부터

'일본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으니 내려와서

제사상이라도 하나 차려 두고 향이라도 사르자’는 전화를

받았을 때는 차라리 담담했다.


그러나 갓난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안고 지하철 층계를 내려가는데,

자꾸만 아기가 포대기 밖으로 빠져 버리고 없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포대기를 들치고 잠자는 아기를 확인하곤

하다가 어느 순간에 가슴이 울컥 받쳐왔다.


그렇다. 

아버지도 포대기 속에 싸인 나를 이렇게 들여다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에 아버지의 가슴에도 이런 든든함이 일었지 않았을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캄캄한 솔밭 길은 아버지와 함께 외갓집으로

가는 길이었지 않았을까..

외갓집으로 가는 길목에는 솔띠재라고 하는 소나무 숲이 무성한 재가 있었으니..


그러나... 

막상 작은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유해를 고향 선산으로 모셔오자고 했을 때는 응낙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처도 자식도 거기에 다 있으니 아버지의 영혼은 거기 

 에 계시길 더 바랄 것입니다.”


작은 아버지가 뭐라고 더 말을 하려고 했으나 나는 회사 일이

바쁘다며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 버렸다.


이젠 나도 어느새 흔히 말하듯 이자, 곧 덤이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누군가가 서른다섯까지는 이자가 있는 나이라고 했다)

전에는 이해할 수 없던 것까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허리둘레가 이해의 넓이만큼이나 넓어진 탓일까?


나는 작은 아버지의 의견에 순순히 따랐다.

나는 작은 아버지한테 아버지의 유해를 모셔오기 전에

그쪽에 있는 동생을 먼저 만나 봐야겠다고 말했다.

죽은 사람보다도 살아 있는 우리의 교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듯해서 그랬다.


지난해 팔월에, 부관 페리호 편으로

아버지의 모습을 나보다도 더 많이 닮은 저쪽의 동생이 도착했다.

우리는 쑥스러운 듯이 씨익 웃었고,

덤덤한 듯이 손을 잡았다.


작은 아버지가 옆에서 뭐라고 말을 했으나 나는 머릿속이 갑자기

웅웅거려서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뚜벅뚜벅 걷던 녀석이 순간에 복통이라도 일어난 듯이

벽에 기대는가 싶더니 풀썩 주저앉았다.

다음 순간에 내가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자마자 녀석은

“억” 하고 울음을 토했다.


나는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나는 저쪽의 동생 머리를 끌어안고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더 많이 울었다.


지난해 시월에는 내가 일본으로 갔다.

아버지의 유해를 모셔 오려고 그랬다.

경사가 심한 고갯마루를 내려서자 도시가 펼쳐져 있었는데

아버지의 집은 바닷자락과 만나는 뚝방 아래의 마을에 있었다.


동생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는 한사코 그 마을을 떠나지 않으려 했단다.

나는 그 이유를 어슴푸레 짚을 수 있었다.

포구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 마을의 위치가

우리 고향 마을의 앉음새와 흡사했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 방에서 아버지가 즐겨 베었다는 목침을 베고 누웠다.

그러자 무심결에 건너편 벽에 걸려 있는 오래된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땀땀이 수를 놓은 풍경이었는데 그것은 밀레의 만종이었다.

그런데 들녘과 거기에 서있는 농부가 우리 한국인 부부로 바꿔져 있는 것이 아닌가?


들녘 끝의 초가집 교회, 그리고 우리 식의 거름 더미,

치마저고리를 입고 수건을 쓴 부인과 핫바지 차림의 남정네.

그 곁에 지게 작대기 하나로 받쳐져  있는 바지게.


나는 벌떡 일어나서 수놓은 그림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 그림의 맨 아래 귀퉁이에 새겨져 있는 이름을 보았다.

‘ 정순 ’

아! 그것은 우리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시집을 올 때에 가지고 온 그림을 액자에

끼워서 당신 눈에 가장 잘 보이는 벽에 걸어두고 살아가신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유해를 가슴에 안고 아버지가 건너가셨던 길을

따라 돌아왔다.

부산으로 떠나는 배에 오르면서

마음속으로 나는 조용히 아버지께 말했다.


“아버지 가십시다. 

떠돌던 발걸음을 멈추시고 고향으로 걸음을 돌립시다.

지금쯤 고향에는 가을걷이가 끝나고 있습니다.

깨도 걷고,

콩도 걷고,

고구마도 캐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적부터 함께 해온 바람과 흙과

흐르는 물이 있습니다.”


“억새도 피어서 흔들거리고, 

재 너머에서는 파도 소리도 들려 올 것입니다.

아버지, 

이제 바지게를 받쳐두시고 어머니와 함께 손을 모아 주십시오.”


“그 그늘 속에서 저는 조용히 갈잎 피리라도 불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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