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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8 > 예수님,절 받으십쇼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09 조회수957 추천수7 반대(0) 신고

 

 

                      예수님,절 받으십쇼



   꼭 30년 전의 일이다.

   1962년 1월 1일.

   사범학교 졸업을 며칠 앞두고 새해를 맞는 내 마음은 쓸쓸하고 황량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선생이 남아돌아 발령이 정체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본래 신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빚을 먼저 갚고 신학교에 가라시는 부모님의 말씀 때문에 사범학교에 들어가 선생이 된 것 인데 내앞의 선배들이 발령을 못 받고 1년 내내 놀고 있는 것을 보고는 크게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집은 그때 동생의 무서운 병과 엄청난 빚 때문에 큰 곤란을 겪고 있었다.


   ‘인숙이’ 라는 여동생이 태어난 것은 내가 중학생 때였다. 얼굴도 예뻤는데 돌도 안 되어 경기(驚氣)를 한 번 한 것이 그대로 병이 되어 아주 속수무책이었다. 몇 년 동안 기도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으며 고치지도 못할 병을 고치려고 병원비와 약값을 대느라 빚만 산더미처럼 지게 되었다. 그때는 한 달 이자가 1할 5부 였다.


   식구가 많았던 우리는 아버지 혼자의 봉급으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정말 거지같이 살았으며 돈 때문에 비굴해져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았었다.


   오후 늦게부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새해 첫날에 눈을 보게 되자 나는 무엇에 홀린 듯이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대전의 보문산이었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었으며 눈보라는 더욱 거세어지는데, 나는 바위 위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뭔 기도를 했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다만 내려올 때는 웬지 그냥 올 수가 없어서 바위 밑에 도장을 두고 왔다. 이를테면 하느님께 바치는 나의 예물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보름이 지난 뒤였다.

   그날은 마침 내 생일이어서 혼자 소주병을 들고 산을 찾았더니 그때의 내 도장이 정상의 바위 위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거기에 놓았는지는 모르나 굉장히 반가웠으며 아주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1962년 2월 10일에 나는 대전 사범학교를 졸업했는데 그해 3월 31일에 스타트로 발령을 받아 선생이 되었으며 나중에 1차 발령자들이 다시 면직되었을 때도 유독 나만은 구제되어 동기 중에서 호봉이 가장 높았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그때 발령을 못 받고 2년간을 놀아야 했다.


   빚을 다 갚는 데는 그 후로 10년이 걸렸으며 동생은 올해 나이 서른일곱이니 식물인간으로 의식없이 지낸 세월만 해도 30년이 넘는다.


   밤이 아무리 길어도 새벽은 꼭 온다.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우리에게 필요없는 눈물을 흘리게 하시지는 않는다. 빚을 다 갚고 나서야 인숙이를 은총으로 여기게 된 것이 부럽기만 하다.


   1992년.

   선생이 된 지는 만30년이요, 신부가 된 지는 꼭 10년이다. 감회가 크다.


  “예수님, 절 받으십쇼.”

http://my.catholic.or.kr/vegabond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소록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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