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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 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10 조회수758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6년 8월 10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I say to you,
unless a grain of wheat falls to the ground and dies,
it remains just a grain of wheat;
but if it dies, it produces much fruit.

(Jn 12.24)

 

 

 

제1독서 고린토 2서 9,6-10

 

복음 요한 12,24-26

 

번지 점프를 하기 위해서 각국의 학생들이 모였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번지 점프를 하기 때문에 겁에 잔뜩 질린 학생들을 조교는 바라보면서 용기를 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한 마디씩 외쳤습니다. 먼저 영국 학생에게 말했습니다.

“신사답게 뛰어 내려라.”

영국 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용감하게 뛰어 내렸습니다. 다음은 프랑스 학생. 이 학생 역시 심하게 떨고 있었지요. 이 학생에게 조교는 말했어요.

“예술적으로 뛰어 내려라.”

그러자 프랑스 학생은 과감하게 그러나 아주 우아하게 예술적으로 점프를 했습니다. 다음은 대한민국 학생입니다. 이 학생 역시 겁에 질려 있었는데 조교가 한 마디를 하자마자 바로 뛰어 내렸다고 하네요. 과연 무엇이라고 말했을까요?

“내신에 들어간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명을 가지고 그들은 그 높은 곳에서 번지 점프를 할 수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영국은 신사도 정신, 프랑스의 예술, 그러나 우리나라 학생은 내신에 들어간다는 말에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정도로 공부가 모든 것으로 여겨지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튼 자신이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그 소중한 것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고작 ‘내신’이라면 너무 째째해 보이고 형편없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득 이러한 상상을 해봅니다.

역시 번지점프를 위해서 점프대에 올라섰고 조교가 이렇게 묻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뛰어 내려라.”

그렇다면 과연 뛰어 내릴 수 있을까요? 혹시 계속 타협하면서 절대로 뛰어 내릴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자기를 위해서라면 형편없는 이유에도 뛰어내릴 수 있으면서도, 주님을 위해서라면 주저하고 있는 ‘나’는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꼭 명심해서 들어야 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맞습니다. 이제는 자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이라면 과감하게 번지점프대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바로 그때 주님으로 인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버릴 때 비로소 참 생명을 살 수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지요. 누구나 고통은 싫어하지요. 하지만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고통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고통을 피하지 맙시다.


 

 
5분의 의미('좋은 글' 중에서)


 

사형수의 몸이 되어 최후의 5분이 주어졌다. 28년을 살아오면서 5분이 이처럼 소중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5분을 어떻게 쓸까?

옆에 있는 두 사형수에게 한 마디씩 작별인사 하는데 2분, 오늘까지 살아온 생활을 정리해 보는데 2분, 나머지 1분은 대지를 그리고 자연을 둘러보는데 쓰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눈에 고인 눈물을 삼키면서 작별인사를 하고 가족들을 잠깐 생각하는데 벌써 2분이 지나버렸다.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돌이켜 보려는 순간 '3분 후면 내 인생도 끝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지난 28년이란 세월을 아껴쓰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이제 다시 한 번 더 살 수 있다면 순간 순간을 아껴 쓰련만, 이제 죽었구나."하는 순간 기적적으로 풀려 난 그는 사형대에서 느꼈던 '시간의 소중함'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영원한 만남'등 수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여 톨스토이에 비견되는 세계적 문호로 성공하였다.

그가 바로 도스토옙스키이다.

우리는 시간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나에게 정녕 최후의 5분밖에 시간이 없다면, 과연 나의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인생은 5분의 연속이다.

 

Whoever serves me must follow me,
and where I am, there also will my servant be.
The Father will honor whoever serves me.”
(Jn 12.26)

 

 

Scent of A Mo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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