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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복음묵상] 예수 추종의 길 / 박상대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11 조회수676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6년 8월 11일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마태오 16,24-25)

 

 "Whoever wishes to come after me must deny himself,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For whoever wishes to save his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will find it.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 행실대로 사람의 아들이 갚아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

 

 불가에서는 생로병사 모두가 ‘고’(苦)라고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고통이 많이 따릅니다.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십자가보다 자신의 것이 더 크고 무겁게 여겨집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듯, 다른 사람의 십자가는 작고 가벼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각자가 질 수 있는 크기의 십자가를 주신다고 합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인간을 벌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당신께서도 친히 십자가를 지셨듯이,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을 보여 주셨듯이, 고통의 십자가는 인간에게 주어질 영광을 위한 신비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기꺼이 주님을 따릅시다.

 

 

† 예수 추종의 길

-박상대 신부-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에서 다루었던 '베드로의 고백'과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에 이어 '예수 추종의 길'과 '종말의 시기에 관한 단절어'가 이어집니다. 특히 '예수 추종의 길'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을 따르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인데, 제자가 스승을 따르는 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을 수 있으나 스승을 가장 잘 따르는 방법은 스승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을 통하여 주어진 베드로의 고민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수난의 길을 가셨고, 자기 목숨을 내어놓음으로써 오히려 목숨을 얻어 생명의 주인이 되셨듯이, 예수님의 제자도 똑같은 방법으로 스승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자신을 버리고, 목숨을 내어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데, 왜냐하면 자아를 부정하는 것은 오히려 자아를 긍정하는 것이고, 목숨을 버리는 것은 목숨을 더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긍정과 사랑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론)과 모범(실천)에 질서 지워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요구를 글자그대로 따를 수도 있지만, 그 어느 것도 극단적인 방법은 옳지 않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존중하며,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아무튼 예수께 대한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이 있은 후, 예수님은 모든 제자들에게 첫 번째 수난을 예고하고 십자가 추종에의 초대를 선포하십니다. 수난예고는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함께 공관복음 모두가 보도하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사건'의 도입부 역할을 하는데,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이 메시아이자 야훼의 종인 당신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내다보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배척과 고난과 죽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다 이루어지면 반드시 부활이 그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함께 내다보고 계십니다. 부활을 향한 그 날까지 반드시 일어나야 할 일들을 위해 스승은 서서히 제자들을 준비시키고 있는 것이며, 첫 번째 수난예고와 함께 예수께서는 제자들 또한 스승의 길을 그대로 따라오기를 원하시면서 추종의 기준을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추종의 기준을 보면,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고,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곧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자기 목숨을 살리려 하는 자는 오히려 잃고, 잃는 사람은 되려 얻는다는 것인데,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일방적인 자기비하나 겸손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 모든 '자기를 버림과 잃음'은 철저히 예수님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는 예수를 위하여, 그리고 예수 옆에 머물기 위해 자신의 명예와 삶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이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자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하는데, 그분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는 것은 하느님 때문에 내어놓는 것이며, 이는 곧 하느님께서 죽어갈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를 바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예수께서 생명을 사랑하기 때문에 생명이 죽음을 이길 수 있도록 생명을 죽음에 부치시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오늘 스승이 제자들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은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닙니다. 스승이 앞으로 당해야 한다는 일도 그렇고, 그런 달갑지 않은 일을 대비하도록 제시하는 추종의 기준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상 자기의 추종자들에게 지지와 따름에 대한 보상을 약속하는데, 이 경우 약속된 보상은 거의 달콤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때로는 목숨까지 내어놓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진데, 한가지 다른 것은 약속의 내용입니다. 즉, 예수라는 스승이 자기 제자들에게 약속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함께 죽자는 것입니다. 사실은 죽음 후에 주어질 부활이 함께 약속되었지만 아직 제자들이 부활을 깨닫기는 멀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생명이 죽음을 이기는 법칙을 말씀하시는데, 쉽게 말하면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는 법칙입니다.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것, 예수를 위하여 생명을 잃음으로써 얻는 것, 이는 게임과도 같은 것이며 하나의 내기와도 같습니다. 말도 안 되는 게임 같지만 이기면 온 세상을 얻는 것보다 더 소중한 영원한 생명이 주어집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십자가의 추종에는 제자들뿐 아니라 모든 믿는 이들도 초대되었습니다. 누구든지 마지막까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버릴 때, 진실로 자신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며, 예수님만이 줄 수 있는 기쁨 안에 머무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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