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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55) 이 낡은 성경 한 권이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11 조회수703 추천수2 반대(0) 신고

 

 

요즘 나는 매일매일 성경을 읽고 있다.

굿뉴스에서는 지금 성경쓰기가 한창이라는데, 난 역으로 읽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자매님으로부터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해보라는 권유를 받고서였다.

앞으로 십년을 작정하고 대여섯번 정도 그렇게 완독을 하고 나면 뭔가가 조금은 보일 것이라는 충고도 해주었다.

 

91년도에 교리를 받기 시작하면서 성경 한 권을 샀었다.

그런데 너무 크고 두꺼워서 도저히 갖고 다닐 수가 없었다.

성경 책을 갖고 가야할 때 너무 무거워 갖고 다닐 수가 없어 다시 신약을  한 권 샀다.

그리고 그 무거운 성경은 책꽂이에 꽂힌 채 제구실을 못하고 지내왔다.

그런 탓에 대충 신약 중 4대복음은 그런대로 자주 들어 귀에 익지만 구약은 읽지를 않아 전혀 두서가 없었다.

성경을 읽으려하면 졸음이 와서 한페이지도 읽기 전에 잠이 쏟아지는 관계로...

한마디로 영 취미가 없었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창세기부터 한장한장 읽으며 어느새 출애굽기를 거의 다 읽고 레위기로 넘어가려 한다.

매일매일 한장이라도 읽고 넘어가니 습관처럼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읽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사실 교리받기 시작한지는 열여섯해가 되었지만 쉬는 기간이 무척 길었고, 열심히 성당에 나가는 건 이제 여섯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그동안에 신약을 좀 접했을 뿐이다.

그런데 가끔 구약이 필요할 때가 있어 다시 신구약이 함께 있는 작은 성경을 한 권 샀는데, 글자가 너무 작아 읽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16년전에 산 그 큰 성경으로  요즘 읽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90년도에 인쇄된 책이라서 한글표기가 옛날식이다.

(습니다)를 (읍니다)로, (습니까?)를 (읍니까?)로 표기하고 있지만 그런대로 유용하게 사용하는 중이다.

 

사십이 넘도록 성당은 물론 예배당에도 한 번 가본 적이 없던 내가 이렇게 천주교 신자가 된것도 기묘한 일이지만, 평생 문학서적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내가 더우기 신학적인 책에는 더욱 외면하던 내가 지금 성경 읽기에 재미를 느끼는 것 또한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교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던 내가 쥐꼬리만한 성경지식이나마 갖고 있었다면 그것은  문학작품이나 영화를  통해서였다.

(카인의 후예) (쿼바디스)등등의 수많은 문학작품을 통해서 (벤허) (십계)같은 영화를 통해서 얻은 지식들이다.

그중에서도  "출(出)에덴記" 같은 소설은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아주 오래전 어린 나이에 나는 그 소설을  신문에서 읽었다.

그해 신춘문예에 당선된 단편소설이었다.

한 어린 소년의 눈을 통해서 본 아버지의 잔혹함과 탐욕과 죄악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어린 소녀를 겁탈하는 아버지의 등을 온통 휘감고 있는 뱀의 문신이 한 인간의 죄악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아버지는, 아니 인간은 그 순간부터 죄를 지은 존재로 에덴 동산을 쫓겨난 죄인으로 그렇게 끊임없이 죄를 저지르며 살고 있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의 후예도 결국은 인간의 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마도 원죄를 지니고 있는  인간의 버리기 어려운 탐욕과 영원한 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해보면 문학이나 그림이나 건축물이나 음악이나 모든 예술분야에서 종교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얼마나 그 내용이 빈약하고 초라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불교든 그리스도교든 이슬람이든 나름대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 안에서 진리와 미를 추구해 온 것이 아닐까.

만일 이 지구상에  종교가 없었다면 그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하느님은 인간을 변화시키심에 틀림이 없다.

그렇게도 성경 읽기를 싫어하던 나로 하여금 이 삼복더위에 성경삼매경에 빠지게 하시다니.....

수십년간을 그렇게도 미치게 빠졌던 소설읽기에서 완전히 등을 돌리게 하시다니.....

상대가 변화하길 바라느니 차라리 자신이 변화하는 것이 빠르다는 말이 있지만, 자신도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을 이렇게 하느님은 변화시키기도 하시는가 보다.

그리고 별 소용이 없어 이사올 때 처분하려 했던 이 낡은 성경 한 권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내 안에 매일매일 말씀으로 찾아온다. 

 

헌 책이라서,

너무 무거워 어차피 갖고 다닐 수는 없는 책이라서,

부담없이 밑줄 긋고 동그라미 치고 훼손되는 중에서도

내 안에 하루하루 말씀의 양식으로 쌓여가고 있는 이 성경처럼,

영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이 낡은 성경처럼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변신하여 유용하게 쓰일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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