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12 조회수568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6년 8월 12일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Why could we not drive it out?”
He said to them, “Because of your little faith.
Amen, I say to you, if you have faith the size of a mustard seed,
you will say to this mountain,
‘Move from here to there,’ and it will move.
Nothing will be impossible for you.”
(Mt 17.20)

제1독서 하바꾹 1,12―2,4

 

복음 마태오 17,14-20

 

인간이 달걀을 품어서 부화시킬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능할까요? 이 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이유를 들어서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체온은 36도 전후이지만, 닭은 40도이기 때문에 인간이 달걀을 품어서 부화시킬 수 있는 확률은 전혀 없습니다.’

이를 실험으로 증명해 보자고 주장한 사람이 실제로 일본에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네 명의 실험자를 모집한 뒤에 호텔에 투숙시키며 수의사와 기록자를 동반해 지속적으로 관찰했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진 것이에요. 글쎄 20일 만에 한 할머니가 품고 있던 알에서 건강한 병아리가 나온 것이었지요.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사실 때문에 일본 전역이 들썩였고, 전 세계로 이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이 실험을 하자고 주장했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문가의 말만 따랐다면 결코 굳은 머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혁명가가 되는 기분으로 덤벼 보아야 합니다.”

저도 이 글을 보고서야 처음 알았네요. 인간도 달걀을 부화시킬 수 있다고 말입니다. 사실 우리들의 고정관념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더군다나 전문가들도 인간과 닭의 체온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데, 누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문득 우리들의 믿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믿음도 나의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인해서 퇴색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사실 주님의 말씀을 모두 믿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마 이 점은 이천년 전의 예수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마귀를 쫓는 권한을 받았습니다. 그 권한을 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안 보이던 것이 눈에 보이고, 자신이 몸이 붕붕 공중으로 뜨고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 권한을 주셨지만, 제자들의 외적인 모습에는 그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자 중에서는 ‘내가 무슨 능력은 받은 건가?’라는 생각을 했던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 들린 사람을 데리고 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분명히 예수님으로부터 마귀를 쫓는 권한을 받았는데 말이지요. 바로 의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과연 쫓아낼 수 있을까? 나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주님께서 주신 그 능력을 의심했기 때문에 마귀를 쫓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주 자그마한 믿음만 있어도, 산도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믿음은 과연 어떠한가요? 눈에 보이는 사실만을,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어떠한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굳어 버린 마음이 가능할 수도 있는 것들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요?

믿음은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합니다. 그 불가능을 나의 굳쎈 믿음으로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멋질 것 같지 않습니까?

 

예수님 말씀을 굳게 믿음으로써, 희망을 잃지 마세요.


 

 
성공을 위한 좋은 글(아놀드 베네트)


 

'내일부터가 아니라 오늘부터'이다

'다음부터가 아니라 지금부터'이다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지'가 아니라
'오늘은 무엇을 했는지'이다

'무엇이 이뤄졌으면'이 아니라
'무엇을 노력하고 있는지'이다

'원하는 것이 왜 안 이뤄지는지'가 아니라
'원하는 것을 위해 왜 행동하지 않는지'이다

'나는 왜 안 되느냐'가 아니라
'나는 왜 행동하지 않느냐'이다

'나는 무엇 무엇을 할 것이다'가 아니라
'나는 무엇 무엇을 하고 있다'이다

'내 소원은 이것이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된다'이다

 

“O faithless and perverse generation, how long will I be with you?
How long will I endure you?
Bring the boy here to me.”

(Mt 17.17)


Wating On The Rainy 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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