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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 > 어느 젊은 예수회원의 편지 / 분황사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13 조회수647 추천수5 반대(0) 신고

                  

 

 

                             분황사



   몇 해 전 수련수사의 신분으로 경북 영천에 있는 부랑인 보호시설에서 실습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최씨 아저씨는 아편 밀매꾼 출신으로 젊은 시절, 주먹을 꽤나 썼을 법한 인상을 풍기는 분이었다.


   마침 내가 그곳에 간 지 열흘이 채 안 되어 일년에 한 번 있는 휴가를 가게 된 최씨 아저씨는 지금 생각해도 순진하리만큼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알코올 중독자이기 때문에 원장님으로부터 간단한 주의를 듣고 용돈을 받아든 최씨 아저씨를 보는 순간, 아슬아슬하게 그이를 지켜보는 주위의 선생들과는 달리 나는 진심으로 그이가 휴가에 성공하고 돌아오길 바랐다. 그리고 일 주일이 지났다. 나는 그동안 여동으로 옮겼기 때문에 최씨 아저씨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점심 식사에 곁들여 먹을 풋고추를 따러 고추밭에 나갔다가 그이를 만났다. 당연히 나는 그이의 휴가가 궁금해졌다. 주위의 선생들로부터 무사히 귀원했다는 기쁜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와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 매우 반갑게 악수를 하며 물어 보지도 않은 자신의 휴가 때 일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 동안 그이의 얘기를 듣다가 아주 느린 속도로 찾아드는, 까닭을 알 수 없는 슬픔이 솟아 오르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는 경주의 분황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분황사를 여느 절처럼 묘사하고 있었고 더구나 매우 화려하게 그려내고 있었던 까닭이다. 나는 분황사는 절터만 남아 있는 유적지임을 그에게 지적하지 않았다. 그가 경주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약한 흔적만 가지고 신앙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최씨 아저씨를 떠올린다. 그리고 보잘것없어 뵈는 그 흔적에 대해 도리어 왜 무너졌는지를 안간힘으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놀랍게도 내 신앙의 터에 굵은 기둥 하나가 세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2코린 12,10)


          -외로움의 폭넓은 지류를 건너다(어느 젊은 예수회원의 편지)중에서-

                             ( 김상용 도미니코 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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