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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개의 노선, 어느 길을 택하겠는가?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13 조회수614 추천수2 반대(0) 신고
 


정겨운 우리의 가곡과 함께♬



(가곡을 듣고싶을때..클릭하세요)

 

 

 

 

<두 개의 노선, 어느 길을 택하겠는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유대인들은 매주 안식일에 모여 율법서와 예언서를 읽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했다. 아버지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서에서는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갈등을 일으키는 장면이 여럿 나온다.


  오늘 복음 말씀 장면도 유대인들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라는 예수님 말에 수군거렸다. 차원이 다른 세계의 모습을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올바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다. 요한복음 저자는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데, ‘본다’ 는 뜻을 지닌 두 개의 단어를 사용하여 그 차이를 표현한다. 그리스어 동사 theorein, 과 horao 는 모두 본다는 뜻을 지녔는데, 테오레인은 ‘극장에서 구경꾼처럼 본다’ 는 뜻이고 호라오는 ‘통찰력과 믿음을 갖고 본다’ 는 뜻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빵” 을 알아보려면 구경꾼처럼 외면적인 모습만 보아서는 결코 알아들을 수 없다. 유대인들은 예수의 외면적 모습에 고정되어 육화하신 그분을 통찰할 능력이 없었다. 빵을 많게 하는 표징을 이미 경험했는데도 그들은 육신의 배고픔만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 가시려는 예수님의 말씀에 울리는 징처럼 수군대었다(공귀제인).


  인간은 누구라도 하느님 아버지를 뵙지 못했다. 그러기에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의 말씀을 믿지 않고서는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이 어렵다. 그런데도 자기들이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핑계를 대어서 눈과 귀를 닫으려한다. 가능성을 조금도 열려하지 않았다. 아니면 제게 유리한대로 생각한다. 광야에서 모세처럼 만나를 계속 내려주길 바라면서 억지로라도 모셔다가 임금으로 세우려했다.


  유대인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40 년이나 먹었지만 그들은 하느님을 배반하였고, 또 모두 죽었다. 이 역사를 다시 반복하고자 하는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마땅치 않았다.


  인간이 살아가려면 육신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빵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생명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예수님은 그 차원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차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복음서는 논리와 설명으로 쓴 책이 아니다. 표징과 상징, 직유로 쓰여 졌다. 그것을 알아들으려면 통찰력과 믿음이 필요하다. 요한복음서에 “나는 ~이다.” 라는 직유법 표현이 26 회나 나온다. 그 표현을 다 모아도 예수님의 참 모습을 제대로 그릴 수는 없다. 그분의 모습을 제대로 ‘호라오’하려면 먼저 우리는 겸손 되이 그분에게 다가가야 한다. 당신이 원하시는 때, 계시하는 대로 받아드려야 한다. 또 하느님은 내면으로부터 우리를 변화 시키는 분이다. 한꺼번에 인간이 겪고 있는 외부 조건을 바꾸어 주지 않으신다. 비참과 환멸, 고통과 슬픔은 여전히 우리를 옭조이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현존은 역시 빵처럼 우리에게 또 다른 에너지를 주신다. 행동하게 만드신다.


  “살아 있는 빵” 이란 다름 아니라 우리에게 활동할 에너지를 준다는 뜻이다. 그 빵을 먹으면 우리는 쉽게 지치고 무너지지 않는다. 언제라도 일어설 수 있는 새로운 활력을 준다는 뜻이다.


  그 빵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무상의 선물이다. 나가서 주님을 증거 하라고 주시는 성사이다.


  그러기에 이 빵을 먹는 자는 하느님의 일을 수행하는 에너지를 계속 공급받게 되며, 죽더라도 사는 힘을 비축하게 된다.

  요한 저자가 말하는 두 개의 노선 중에 어느 길을 택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관객처럼 감상만 하고 있을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주님께 다가갈 것인지 오늘도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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