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스테레오타입의 인간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14 조회수568 추천수3 반대(0) 신고

 

 

 

< Stereotype의 인간> - 윤경재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였다.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마태 17,24-27)



  오늘 복음은 마태오복음에만 있는 특수사료입니다. 제가 이 대목을 읽으며 많은 의심이 들어 어떻게 알아들어야 좋을지 고민을 아주 많이 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께서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 싫어 회피하시는 것도 같고, 단순히 예수님의 예지능력이 뛰어난 것을 표현하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런 정도의 내용을 마태오 복음저자가 기록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보았습니다.


  복음 내용을 심층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예수님과 그 제자 일행이 카파르나움에 들르셨을 때 세관에 근무하는 이가 베드로에게 질문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세를 내시는지 묻습니다. 그 질문은 겉으로 보기엔 세금을 더 걷기 위한 목적이지만, 그 속마음엔 너희 스승이라는 사람이 정통 유대인인지 아닌지 묻는 것입니다. 또 율법을 잘 지키는지 따져 묻는 것입니다. 그 뿌리가 확실한 유대 출신이며 하느님 신앙이 투철한지 캐묻는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주저 없이 성전 세를 낸다고 대답합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이 정통 유대인이고 하느님을 섬기는 분이니 율법이 지시하는 대로 처신하신다는 답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 심리학에서 말하는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이라는 용어를 살펴보겠습니다. 그 의미는 보통 사람들이 흔히 유행과 문화가 요구하는 대로 따르는 경향이 있는데, 특정한 흐름에 의하여 미리 유형화되고 사회적으로도 공유된 고정관념내지 이미지에 아무런 의심 없이 판단하고 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럴 때 스테레오타입의 사람들은 불확실한 것을 제 멋대로 판단하고, 새로운 증거가 나와도 변용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요즈음엔 미니스커트와 다이어트가 유행입니다. 이런 때는 긴 치마와 뚱뚱한 모습은 어색하게 보이고, 촌스럽게 보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자기 체형과 건강 여부에 상관하지 않고 유행을 따르게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 스테레오타입 행동을 주체성 결여나, 쉽게 집단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따른다고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단일 혈통과 동일 언어를 쓰는 민족에 이런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유대인들도 한 민족의식과 단일 종교의식이 강하였으니 이런 경향이 강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사실 예수님께 여쭙지 않고 스스로 즉각적으로 생각 없이 대답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베드로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가르치고 싶으셨나 봅니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질문에 닥치면 깊은 생각 없이 즉각적으로 대답합니다. 바로 스테레오타입의 함정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는 다릅니다. 즉응즉답을 회피 하십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은 항상 질문에 상대방에게 되물으십니다. 너의 생각은 어떠냐? 네 스스로 판단해 보라는 뜻입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도,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그 제자를 보내어 예수님이 오실 메시아가 맞느냐는 질문에도 즉답하지 않습니다. 간음한 여인의 처리를 묻는 장면에서도 그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하시며 상황을 정리하십니다. 또 빌라도가 “당신이 유대인의 임금이오?” 하고 물을 때도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라고 답하십니다. 세금문제로 예수님을 곤란에 빠뜨리려 질문하는 유대인들에게도 동전에 새겨진 초상이 누구인지 묻습니다.


  항상 예수님은 질문에 즉응즉답하지 않고 상대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십니다. 옳고 그름을 스스로 묻게 만드십니다. 이런 것을 독일어로 “gestalt” 라고 부른다고 C.M. 마르티니 추기경은 책에서 말합니다. “관조하며 상황의 질서를 잡아가는 것” 이라는 뜻입니다.


   이 대목에서도 베드로에게 질문합니다. 생각하게 만드십니다.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 받는 것이다.” 이 말씀은 성전 세를 내지 않는 것이 옳다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아무 생각 없이 응답하는 버릇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사고는 이것 아니면 저것 이라는 흑백논리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삶에서 많은 경우 A 가 아니라고 해서 非A 인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아마도 이랬을 겁니다. “성전 세를 낸다.”, “성전 세를 내지 않는다.” 이 두 대답이 모두 맞지 않는다. “성전 세를 내지 않지도 않는다.”고 말하시는 것입니다. 그 당시 종교 질서에 아무 의심 없이 합류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입니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베드로에게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체성을 자각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적당히 타협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아직 나설 때가 아니니 우선은 피하고 보자는 뜻도 더욱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어떤 불의에도 굽히지 않고 타협하거나 회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유로우신 분입니다.


  그것은 베드로에게 쓸 데 없는 것에 고민하지 말라는 요청입니다. 비본질적인 것에 걱정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남들이 말하는 평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바라보고 깨우치라는 뜻입니다. 안소니 드 멜로 신부는 “모든 판단을 버리고 단순히 관찰하고 살펴보라” 고 합니다. 그것이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깨달음을 얻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이 말씀은 베드로의 체면을 살리고 성전 세를 직접 내고 싶지 않은 예수님의 속마음을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간음한 여인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은지 요청받으셨을 때, 땅바닥에 무언가 쓰시는 동작을 하신 것처럼, 갈등상황을 풀어 주는 행동언어입니다.


  우리들은 너무 이원론적 사고에 빠져 하느님마저 우리의 사고의 틀에 짜 맞추려고 합니다. 하느님의 영역은 인간의 사고를 넘어서는 다른 차원입니다. 그야말로 아드님 외에 그 누구도 아버지를 뵌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하느님의 일이란, 그 아드님을 믿는 것이 하느님의 일을 수행하는 것입니다.(요한 6,29)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