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 인간의 생애가 이렇게 숭고하다는 것을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14 조회수1,033 추천수13 반대(0) 신고
8월 14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마태오 17장 22-27절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한 인간의 생애가 이렇게 숭고하다는 것을>


오늘 우리는 폴란드 태생 꼰벤투알 성 프란치스코회 회원이자 ‘원죄 없으신 성모기사회’(Militia Immmaculatae) 창립자이신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님의 천상탄일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에 정신없는 제게, 아직 제 자신조차도 극복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제게, 성인의 생애는 너무나 커보였습니다.


역사상 자신에게 다가온 마지막 순간인 죽음 앞에서 콜베 신부님처럼 그리도 침착하고 의연한 태도를 보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신부님의 전기를 꼼꼼히 읽어보면서 신부님은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러 나가셨습니다. 가장 값진 선물을 받은 어린이처럼 죽음 앞에서 기뻐하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한 인간의 생애가 이렇게 숭고할 수 있다는 것, 당당할 수 있다는 것,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이윽고 때가 되어 나치들이 콜베 신부님이 머무시던 수도원을 찾아왔습니다. 짐짝처럼 실려 죽음의 수용소로 떠나가면서도 신부님께서는 동료수도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우리는 선교하러 떠나는 것이 아닙니까? 게다가 여비까지 딴 사람이 치러주니 얼마나 큰 이익입니까? 이제 가능한 한 많은 영혼을 얻기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 성모님께 ‘우리는 만족합니다.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라고 말씀드립시다.”


드디어 신부님께서 죽음의 아사 감방으로 자진해서 내려갈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누군가 수용소를 탈출했습니다. 도망친 사람이 끝내 잡히지 않자 소장은 모든 수용자들을 집합시켰습니다.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소장은 10명을 선발해서 아사감방으로 보내기로 했던 것입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갑자기 아사감방으로 가게 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유난히 큰 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아, 불쌍한 아내와 아이들을 이제 다시는 못 보게 되었구나!”


그 순간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습니다. 한 포로가 대열을 이탈해서 소장 앞으로 걸어 나온 것입니다. 콜베 신부님이었습니다.


“원하는 게 뭐냐?”


“저 울고 있는 사람 대신 내게 죽겠소?”


“도대체 왜 그래?”


“나는 늙었고 아무짝에도 쓸 모 없는 사람입니다. 살아있어도 아무 것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너는 누구냐?”


“천주교 사제요.”


길고 긴 침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콜베 신부님은 기다리셨습니다. 콜베 신부님의 시선은 소장의 얼굴 너머 먼 곳으로 향했습니다. 먼 산 너머로 활활 자신을 불태우며 넘어가는 아름다운 석양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콜베 신부님은 그 순간 마지막 미사라도 봉헌하듯이 그렇게 당당하게 서 계셨습니다.


마침내 소장은 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좋다, 함께 가라.”


열 명의 사형수들은 맨발에 셔츠 차림으로 죽음의 감방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그들의 뒤를 따랐습니다. 콜베 신부님은 마치 양떼를 몰고 가는 목자처럼 제일 뒤쪽에서 따라갔습니다. 머리를 약간 옆으로 기울인 채, 가슴 속으로는 천국을 그리면서...


“나의 모후, 나의 주님, 나의 어머님, 오 원죄 없으신 동정녀시여, 당신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나는 지금 바로 이 시간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콜베 신부님의 죽음은 이런 측면에서 자청한 죽음, 예정된 죽음, 계획된 죽음, 준비된 죽음이었습니다. 그는 한 평생 이 마지막 순간, 장엄하게 낙화할 순교의 순간을 꿈꾸어왔던 것입니다. 그의 평생에 걸친 순교자적 생애는 지하 감방에서 활짝 결실을 맺게 된 것입니다.


콜베 신부님의 죽음은 어쩌면 한 점 티 없는 어린 양이셨던 예수님, 순결한 봉헌제물이셨던 예수님의 삶을 판에 박은 듯이 빼닮았던 죽음이었습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