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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엘리사벳의 기쁨(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15 조회수579 추천수2 반대(0) 신고
 

有朋自遠 方來 不亦樂乎!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너무 기쁘도다.)

논어 첫 대목이 생각나는 오늘 복음 말씀입니다. 마리아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벳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늙어 첫 임신을 한 엘리사벳에게 사촌 동생 마리아가 먼 곳 갈릴래아에서 험한 산길과 물을 건너 유다 산악지방까지 방문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입니다. 반가움에 맨발로 뛰어나가 맞이합니다. 그런데 자기의 기쁨이 태아에게도 옮겨 갔는지 태중의 아이도 뱃속에서 뛰놉니다. 엘리사벳은 자기 아이가 그렇게 뛰는 것을 처음 경험합니다.


 또 사촌 마리아의 얼굴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홀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자신이 아이를 뱄을 때 느꼈던 상기된 모습이 마리아의 얼굴에도 온통 가득했습니다.

  “마리아, 좋은 소식 있구나? 맞지!”

수줍은 듯 아무 말 없이 서있는 마리아를 그녀는 꼭 껴안아주었습니다.

  “그래, 아이는 하느님의 선물이야. 처음에는 나도 두렵고 힘들었어.”

  “나랑 같이 여기서  묵으며 편안히 지내자.”


 엘리사벳은 아직 자초지종을 몰랐습니다. 그저 예상치 못한 마리아의 방문이 기뻤습니다. 처음 느낀 태동도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다음날 엘리사벳은 정식 결혼도 안한 마리아가 임신한 것에 대해 걱정이 됐습니다. 마리아를 불러 조용히 물어보았습니다. 마리아에게서 들은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가브리엘 천사 이야기며, 성령으로 하느님의 거룩한 분을 잉태한 이야기, 또 그대로 제게 이루어 지소서하고 대답했다는 마리아의 말을 들었습니다. 너무나도 신기하고 대견한 이야기였습니다. 평소 마리아의 착하고 경건한 심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엄청난 이야기를 듣고 보니 새삼 주님의 은총에 감격했습니다. 나이 어린 마리아가 얼마나 놀랐을까하고 염려도 되었습니다.


  “마리아, 어제 내가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나와 내 뱃속 아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그게 다 네 뱃속 아이 때문이었구나.”


 엘리사벳은 나이 어린 동생이 많이 안쓰러웠습니다. 하루 이틀 함께 지내며 잘 돌보아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린 마리아는 여느 아이들과는 생활 태도가 달랐습니다. 시키지 않은 일도 즐겁게 나서서 했습니다. 몸이 얼마나 잰지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나이 들어 힘들어 하는 엘리사벳을 얼마나 잘 돌보았는지 모릅니다. 그녀가 입덧이 나서 식사를 못하면  다른 음식을 얼른 만들어 가져왔습니다. 하루 종일 하녀처럼 일했습니다.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이나 타일러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일하는 것이 더 편하다며 유쾌한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런데도 틈만 나면 기도하였습니다. 언제 배울 틈이 있었는지 율법서와 예언서도 많이 알았고, 쉐모네를 암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소문으로만 들었지만 직접 마리아를 알고 나니 그녀는 마리아의 모든 것이 좋아졌습니다. 항상 겸손했고 미소 지으며 말할 때는 누구라도 그녀에게 빠져드는 기분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자 마리아는 갈릴래아로 떠났습니다. 정혼한 요셉이 찾아와 더 이상 유대 땅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가 떠난 후에 엘리사벳은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동생에게 편이를 베푼 것이 아니라 자신이 동생에게서 더 크게 사랑받았다고. 마리아와 같이 생활할 때 엘리사벳은 평생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특히 그녀와 대화할 때는 오랜 벗이라도 되는 양 마음속에 지녔던 모든 이야기를 털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나이 차가 그렇게도 많이 났지만  의논 상대가 되어 주었습니다. 남편 즈가리아가 성전 지성소에서 주님 천사를 만난 후에 벙어리가 되어 집에 돌아 왔을 때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릅니다. 집안에서 마음 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습니다. 처음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도 안 났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마리아에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영특한 마리아의 대답은 항상 지혜가 넘쳤습니다. 하인들을 거느리는 것도 누가 주인인지 모를 정도로 되어 하인들이 마리아의 말을 더 따르게 되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자주 마리아의 모습에서 어쩜 자신이 오히려 딸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 생각이 날 때는 자신이 주책 아닌가하고 사래 쳤지만, 막상 마리아가 떠나고 보니 그 생각이 옳았다고 여겨졌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와 같이 생활하면서부터 더 주 하느님의 따뜻한 손길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더 자주 주 하느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특히 마리아와 함께 기도할 때는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전율이 감싸, 장미 꽃 화원에라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것이 하느님 손길이지 싶어 기도가 끝나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하루라도 더 마리아와 함께 지내고 싶었지만 요셉이 찾아와 함께 길을 떠나는 모습을 보니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엘리사벳은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마리아는 말 할 것도 없었고 요셉도 그 태도가 아주 믿음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 하느님께서 두 사람과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섰습니다. 앞날에 어떤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그들은 잘 헤쳐나가리라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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