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 [유광수신부님의 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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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복순 | 작성일2006-08-15 | 조회수598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마태 18,15-20)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의 이야기는 우리가 생활하면서 많이 겪게 되는 경우이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나는 어떻게 하는가? 지금까지 나의 행동이 복음적이었는가 아닌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씀이다. 우선 나의 행동이 복음적이었는가를 반성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뜻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겠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보통 나는 어떻게 하는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를 미워하고 다시는 보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럴 수가 있느냐?" 하면서 화를 내기도 하고, 억울해하기도 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행동이고 마음이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일러주는 말씀은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요, "여러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닮으십시오. 그리스도를 본받아 여러분은 사랑의 생활을 하십시오."(에페 5, 1-2)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사랑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니까 상대방이 와서 용서를 청할 때까지 기다리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적어도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켜야할 그리스도인이라면 형제에 대한 사랑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형제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형제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든지 상처를 받고 있는 상태인데 "나 몰라라."하고 그냥 놔두는 것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가실 줄 모릅니다."(코전 13,5. 6-8)
그를 타일러 데려 오도록 하는 것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행위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는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을"(18,14) 원치 않으신다. 형제가 "죄를 지었다."는 것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오기 위해서 나는 가서 그를 타일러 데려와야 한다. 그것이 형제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친구들과 만났다하면 다른 사람을 흉보고 판단하는 일에 익숙해져있고 또 무척 재미있어한다. 참 고약한 취미를 갖고 있다. "타 이르다."라는 말은 상대방을 꾸짖으라는 말이 아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지 말라. 이웃의 잘못을 서슴지 말고 타일러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벗는다."(레위 19,17)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사랑으로 말해야 하고 겸손하게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고 좋은 말로 말해야 한다.
우리는 가끔 타이르러 갔다가 화해는커녕 더 악화되어 가지고 올 때가 있다. 대화하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말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마음 속에 미워하는 마음, 분노하는 마음, 멸시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기 때문이다. 말을 하러가기 전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아예 타이르러 가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낫다. 마음이 진정이 되고 정말 용서해 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될 때 사랑의 언어와 행동으로 타이르도록 하자. 단 둘이 만나서 잘 안될 때 왜 한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고 그래도 안 되면 교회에 알려야 하는가? 우리가 혼자 가서 안 될 때 상대방을 잘 아는 사람을 데리고 간다든지 아니면 중간에서 서로 오해를 풀게 해줄 사람과 함께 가게 되면 쉽게 용서해줄 수 있고 또 오해를 풀 때가 있다. 또 그렇게라도 안되면 교회의 사제나 수도자 아니면 교회 법정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의 죄를 풀어주기 위해 노력 하는가? 즉 최선을 다 하는가?이다.
왜냐하면 사랑의 의무를 지고 있는 우리가 형제의 죄를 풀어주지 않으면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잃어버린 양은 결국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이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을 갈 때에 누가 그를 바른 길로 돌아 서게 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 서게 한 그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으로보터 구원할 것이고 또 많은 죄를 용서받게 해 줄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두십시오."(야고 5,19-20)
오늘은 나에게 죄를 지은 형제를 용서해주고 화해하는 날이다.
-유광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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