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톡톡 튀는 여인. 류해욱 신부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16 조회수711 추천수2 반대(0) 신고

  톡톡 튀는 여인


  오늘 8월 15일은 여러 가지 사건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1945년 일제의 억압에서 조국이 광복된 날이고, 1948년에 대한민국이 수립된 건국 기념일이기도 하지요. (오늘에 와서는 광복절보다 건국 기념일로 경축하는데 비중을 두자는 의견이 많다고 하네요. 저는 건국보다는 광복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건국은 이미 5000년 전에 이루어진 것이니까요.) 광복은 기쁨인 동시에 아픔이기도 했습니다. 조국이 분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까요.


  우리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오늘은 더욱 중요한 날로 경축해야 하지요.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4대 대축일의 하나로 성모 승천을 기립니다. 저는 이 날을 맞으며 성모 승천은 분명 기쁨이고 영광이지만 또한 성모님과 함께 지내던 교우들에게는 이별이기에 슬픔이기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오늘을 참되게 기리기 위해 성모님이 누구이신 지를 다시 한번 새롭게 인식하며 우리의 신앙의 길에서 그분의 전구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신앙인들에게 마리아가 지니고 있는 특별한 의미는 그분이 바로 우리 신앙의 모범이시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을 믿으며  신앙의 순례의 길을 계속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 신앙의 순례의 길에서 앞서 가신 어머니 마리아를 믿음과 사랑으로 바라보면서 격려와 힘을 얻는 것입니다. 성모 성년을 지내면서 교황께서 반포하셨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줍니다. 마리아는 믿음과 사랑과 그리스도와의 일치에 있어서 교회의 모델이 되셨고 교회가 걸어가고 있는 신앙의 여정에 있어서 선도자가 되셨음을.


  천사의 전갈을 받고 하느님의 위대한 뜻과 계획을 알게 된 마리아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믿음을 지니고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겨 드림으로서 ‘주님의 어머니’가 되신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 맡김, ‘피앗’ (이루어지이다)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이루시려는 신비, 곧 강생의 신비가 이루어지는데 결정적인 것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고백했을 때 하느님이 인간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시는 강생의 신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물론 마리아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지녔던 분이 아니라 믿음을 더 깊여나가기 위해 겪어야 하는 어떤 과정을 거친 우리와 똑같은 인간입니다. “이 몸은 처녀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라는 논리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에 대해 가브리엘 천사는 엘리사벳의 예를 들어가며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설명을 해줍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이 본명이 마리아인데 본명을 물을 때 마리아라고 하면 모두 와르르 웃는답니다. “선생님같이 씩씩한 분이 …” 또는 아주 노골적으로 ”마리아치고는 아주 톡톡 튀십니다.”라고 한답니다. 이분은 자기가 성서에서 만나는 성모님은 진정 용기 있고 결단력 있는 여인, 생명 바쳐 주님의 구원사업에 협력하는 여인, 다른 아무도 하지 못할 일을 씩씩하게 해낼 수 있는 여인이었고 그런 점에서 그야말로 좋은 의미에서 ‘톡톡 튀는’ 여인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마리아는 시대의 사고의 틀을 뛰어넘어 하느님의 비전을 볼 수 있는 열려 있는 여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주님이신 아기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하고 마리아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하는 그 말은 사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없음을 겸손하게 인정하면서, 그분의 말씀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되다’는 의미도 단순히 기쁨과 평화 안에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의인 시므온은 구세주를 자기의 눈으로 뵈옵는 기쁨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마리아가 겪어야 하는 신앙의 시련을 예고해 줍니다. 즉, ‘많은 사람들의 반대 받는 표적’이 될 것이라고 들려주는 그 말은 마리아께서 겪으셔야 하는 고통을 앞서서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마리아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우리 모두의 신앙인으로서 길에 대한 예고이기도 한 것입니다.


  마리아께서 당신이 다 헤아릴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단지 하느님에 대한 신뢰 안에서 받아들이면서 매일의 삶을 믿음 안에서 사셨던 것이고 때로는 불빛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길, 곧 신앙의 여정을 묵묵히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복되면서도 고통스러웠던 신앙의 여정은 마침내 십자가 아래에서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하는 시므온의 예언대로 예리한 칼에 찔리는 듯이 아픈 마음을 그분께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십자가가 죽음으로 끝장이 난 것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문이 되었던 것처럼 마리아가 겪어야 했던 그 신앙의 여정은 아드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으로 완성되게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지내는 축제 바로 성모 마리아의 승천인 것입니다.

  일주일 전부터 계속 제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성모님께서 승천하시기 위해 지상을 떠나시면서 교우들, 함께 머물던 에페소의 교우들에게 마지막으로 어떤 말씀을 들려주셨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는 밀레도스에서 마지막 고별연설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하느님과 그의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자기가 돌보던 공동체를 떠나면서 바오로는 자기가 뽑은 공동체 원로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꾸려 나갈 지에 대해 염려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인간적인 연민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하느님께 맡겼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손안에 달려 있고 궁극적으로 그분이 선으로 이끄시는 분이심을 알았기에 하느님에 대한 신뢰로 공동체를 떠났던 것입니다.


  성모님도 아마 비슷한 말씀을 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당신이 사신 삶이 온전한 하느님께 맡겨드리는 삶이었기에 굳이 말씀이 필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별은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승천은 기쁨이고 영광인 동시에 공동체 사람들과는 이별인 것입니다. 이렇듯 삶은 늘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지내며 신앙인의 길을 묵묵히 걸으심으로서 천상 영광에 들었던 어머니 마리아를 생각하며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신앙의 여정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어머니의 도우심을 청하며 용기를 지니고 걸어 나갑시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