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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단죄나 심판은 오직 하느님의 몫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16 조회수958 추천수14 반대(0) 신고
8월 16일 연중 제19주간 수요일-마태오 18장 15-20절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단죄나 심판은 오직 하느님의 몫>


살아가면서 큰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가 이런 것입니다. 개인에게나 공동체에 심각한 폐해를 끼치고 있는 형제를 눈앞에 두고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대체로 정면 돌파하기를 부담스러워 합니다. 직면하기를 두려워봅니다. 대신 뒤에서 수근 거립니다. 그러다보니 때로 본인은 그 심각성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이런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① 먼저 단 둘이 만나 충고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진지함입니다. 애매모호하게 충고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분노하지도 말고 적개심을 지니지도 말아야 합니다. 오직 상대방을 심각한 죄로부터 구해내고자 하는 형제적 사랑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② 개인적인 형제적 충고가 전혀 먹혀들어가지 않을 때, 증인을 데리고 갑니다. 증인을 데리고 가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내 개인적인 판단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두 명, 혹은 세 명이 가서 충고할 때 때로 먹혀들어갈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식선에서 해결되지 않을 때를 대비한 준비과정이겠습니다.


③ 이런 노력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어쩔 수 없습니다. 교회에 알립니다. 교회의 합법적 권위에 이런 문제를 알려서 더 이상 공동체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조치를 취합니다.


한 형제의 잘못을 교정하는데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밟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 형제에 대한 단죄나 심판을 함에 있어서 그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는 것입니다.


법적인 절차를 밟기 이전 가급적 인간적, 형제적 방법으로 해결을 시도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적, 형제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개인적으로 단죄하거나 심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최종 판단은 하느님의 대리자인 교회 권위에 유보하라는 권고입니다. 심판은 하느님의 몫입니다. 우리들은 상대방이 어떠하든 오직 사랑해야할 의무만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너무나 쉽게 단죄합니다. 판단합니다. 돌아서서 욕합니다. 한 형제를 합법적 권위로부터의 판결을 받기 이전부터 완전히 매장시킵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심각한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잘못한 형제를 용서하기 위해, 그릇된 삶을 살아가는 이웃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을 생명의 길로 건져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이 오늘 복음 말씀의 요지입니다.


잘못한 형제를 향한 충고나 교정, 격려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곳, 그래서 삶의 질이 점점 향상되는 공동체는 어떤 면에서 하느님 나라의 한 모습입니다.


형제적 충고를 열린 마음, 기쁜 마음으로 수용하는 공동체, 한 형제가 어두웠던 지난 삶을 접고 새 삶을 추구하는 공동체는 이미 천국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끼리 끝까지 화해하지 않고, 형제적 충고도 받아들이지 않고, 그래서 서로 고소하고, 교회 권위자의 힘까지 빌려야 하고, 결국 함께 법정에까지 서야하는 모습은 어떤 면에서 지옥의 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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