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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유로이 사랑을 찾아서 <1>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18 조회수685 추천수8 반대(0) 신고
 

자유로이 사랑을 찾아서 <1>

 학업의 실패를 통해 얻은 깨달음

 

나의 실패는 명명백백한 사실이었다. 그것은 세상 만민이 볼 수 있도록 게시판에 떡하니 붙어 있었다. 물리학 과목에서 그만 낙제를 하고 만것이다.

 

복잡하게 얽힌 심정이 가라앉자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합격점에서 불과 1.5점이 모자라 떨어졌다. 의대의 다른 과목들에서는 모두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는데, 그래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두 번째 학기 물리학에서 낙제를 하면 의대를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상심에 빠져 그동안 공부하는라 보냈던 수많은 시간들과 성공을 위해 9일 기도를 비롯해 온갖 기도를 바쳤던 것을 되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물리학 시험을 치르던 날 아침의 일이 떠오르자 나는 더욱 더 괴로워졌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 앉기를 마다하고 멀리 떨어져 앉았었다.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친구들에게 답을 물어보고 싶어질 테니 그런 유혹을 미리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 때 나는 배신을 당한 느낌이었다. 시편의 한구절이 떠올랐다.

 

 "어리던 내가 이제 늙었는데 의인이 버림을 받음도, 그 자손이 빵을 구걸함도 보지 못하였다." (시편 37, 25)

 

그 말은 마치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나는 커닝을 하지 않았으므로 의로운 행동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버림을 안 받았나? 게다가 나는 열 아홉살 어린 나이도 아니었다.

 

<분노와 수치심>

 

나이지리아 대학의 가장 명성 있는 학부에서 제적당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치욕이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당시에 나는 학교의 가톨릭 학생 동아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성경공부를 하며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주제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그 모임을 이끌고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나같은 사람이 무슨 모범을 보여 준단 말인가? 나는 시험에 실패함으로써 학문적 활동과 사회 활동, 영적 활동에 균형을 이루지 못한 사람으로 낙인찍힌 거나 다름 없었다.

 

나는 이 끔찍했던 시기에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 매달렸다. 달리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 불운을 전적으로 예수님 탓으로 돌렸기 때문에 우리의 관계는 함악하기 그지 없었다.

 

나는 하느님의 무능과 무관심에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과연 기도는 무엇 때문에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심지어 '종교는 아펀' 이라고 까지 말한 칼 마르크스의 생각이 옳은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하느님이 정말 계신다고 해도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차이가 있는지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렉산더 오실라우/ 말씀지기 8월호에서>

 

 * 이 글을 쓴 이는 나이지리아의 대학생이다. 그의 요청으로 익명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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