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잔잔한 자기희행' - [오늘 히루도 ~ 홍성만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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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복순 | 작성일2006-08-18 | 조회수922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8월 18일 연중 제19주간
마태 19,3-12
3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 * * * ~~~~~~~~~~~~ 이 사랑만이 부부를 한 몸으로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신명기 24장 1절에 나오는 "아내 소박 법"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던 때로서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내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일어나면 이혼장을 써서 내보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수치스러운 일"이란 간음과 풍기 물란, 음식을 태우는 것과 계율을 어기는 것 등으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아내를 내쫓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둘이 결혼으로 한 몸이 됨을 강조하시며,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의 반응은 당시 사회의 상황을 말해 주는 것인데 반응인즉 이렇습니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내에 대한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당시 상황을 반영하는 제자들의 이러한 발언은 아내를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남편의 사랑스러운 노예 정도로 알고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나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하느님께서 창조한 피조물로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개별 인격체임을 분명하게 밝히신 것입니다.
요사이는 이러한 문재가 문제로서의 여지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결혼으로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확인하면서 둘이 한 몸이 되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부부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부부간의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부부를 기억하면서, 바오로사도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송가"를 되새겨 봅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적극적인 정서가 아니라, 소극적인 정서입니다.
오늘도 희생에 뿌리를 내린 사랑으로, 서로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체득하며 한 몸을 이루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
-홍성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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