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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61) 드디어 귀뚜리가 울었다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18 조회수624 추천수4 반대(0) 신고

 

 

어젯밤, 여름내내 그랬듯이 거실 창문과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 두 시가 넘어 서늘함에 문득 잠이 깨었는데 글쎄 찬바람이 시원하게 불어들어 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렇게 열대야로 밤마다 편한 잠을 못자게 하더니 너무 시원해서 탄성이 터질뻔 했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귀뚜리(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교향악처럼 들려오고 있었어요.

 

또르르르르르르~~~

찌르르르르르르~~~

또르르르르르르~~~

찌르르르르르르~~~

 

아아! 드디어 귀뚜리가 울기 시작했구나!

이제 더위도 그만 물러가겠구나!

그렇게 밤중에도 새벽에도 시도 때도 없이 기승을 떨던 매미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매미는 찬바람을 무척 싫어하나 봅니다.

어제밤까지만 해도 기를 쓰고 울어쌓더니.......

그런데 아침 6시반이 되어 잠이 깨었는데 귀뚜리 소리는 간데없고 다시 매미 울음소리만 기승을 떨더군요.

하지만 이미 찬바람을 쏘인 매미 울음이 전만큼 그악스럽지는 못한것 같습니다.

 

매암매암매암매암 매애애애애애애애~~~아아아아~암~~~

 

금년 여름처럼 매미울음이 짜증스럽게 들린 적도 없는 것같습니다.

전에는 매미울음소리가 더위를 식혀주는 청량한 소리로 느껴진 적도 있었는데, 웬일인지 올 여름엔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매미가 고음으로 울어젖히다가 끝마무리를 바이브레이션으로 떨면서 매아아아~~암~~ 할 때는 망사같은 매미 날개가 파르르 떨리는 듯함을 느끼기도 했건만, 금년엔 유례없는 폭염에 시도때도 없이 울어대는 그 소리가 정말 짜증스러웠답니다.

오늘 밤에도 다시 귀뚜리가 찾아오겠지요.

가을을 재촉하는 전령사 귀뚜리의 앨토가 기다려집니다.

시간은 그렇게 어김없이 흘러가겠지요.

 

매미가 쏘프라노로 운다면 귀뚜리 울음은 한결 차분한 앨토에 가깝습니다.

밤의 적막을 느끼게 하는 차분함입니다.

가을을 재촉하는 귀뚜리 울음이 눈물겹도록 반갑습니다.

귀뚜라미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전에 다른 게시판에 올렸던 귀뚜라미에 관한 글을 묵상방에 올려봅니다.

 

 

 

*********(앞부분 생략.............

친구, 가정, 사회, 국가 간의 모든 불화가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중략..........

 

상대가 말하는 동안 내가 말을 하면 상대방의 주장을 파악하기 어렵게 된다.

 

이 때문에 자연은 늘 자신의 소리는 낮추고 상대 소리는 크게 듣도록 생물을 진화시켜왔다.

 

최근 영국의 한 연구팀은 귀뚜라미에서 이러한 청각억제 반응을 밝혀냈다는 논문을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귀뚜라미 수컷은 앞날개의 울퉁불퉁한 구조를 문질러 소리를 낸다.

귀는 앞다리 종아리 마디에 있다.

따라서 우리 귀에도 그렇게 크게 들리는 소리를 자기 귀로 들으면 엄청난 소음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귀뚜라미는 이 문제를 귀를 닫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신이 소리를 낼 때는 청각신경을 억제해 뇌가 소리 신호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소리를 내지 않을 때는 청각신경을 곤두세워 다른 소리를 잘 듣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은 귀뚜리미를 비롯한 많은 동물들이 내 목소리보다는 남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왜 그럴까?

생존을 위한 오랜 경험의 결과일 것이다.

 

만일 귀뚜라미가 자신과 남의 울음소리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그 정보란 의미없는 것이며, 결국 멸종의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 목소리나 상대방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일은 뇌의 입장에서는 그리 간단한 일만은 아니다.

둘 다 똑같은 경로로 뇌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귀뚜라미는 둘 중 내 것은 아예 포기함으로써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귀에 들어온 소리는 고막을 울리고, 그 진동은 망치뼈 모루뼈 등자뼈로 구성된 <이소골>을 통해 신경세포로 전달된다.

 

그런데 자신의 말소리가 귀에 들어오면 '팀파니 근육'이 <이소골>을 붙잡아 진동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게 한다.

반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올 때는 팀파니 근육이 풀어져 진동이 원래대로 전해진다.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 것을 들으면 평소 자신이 말할 때 듣던 소리와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것은 자아형성과도 관계가 깊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 안토니오 디마지오 교수는 "자신과 외부의 여러가지 감각자극을 구분하면서 자아가 형성돼 간다"고 했다.

 

아기가 누워서 팔을 계속 흔들고 천정에 달린 모빌을 보고 웃는 것도, 내 몸에서 나온 움직임과 외부의 움직임을 구분하는 일종의 자아형성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내 목소리처럼 내 몸에서 나온 감각신호에 꼬리표를 붙여 구분하는 과정 역시 중요한 자아형성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상대의 말을 잘 듣는 것을 지혜와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고 한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일어나 발언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앉아서 경청하는 것이 더 큰 용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미 뇌는 경청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기능에 이상이 생겨 상대방이 말할 때 오히려 귀를 닫아버리고 자신의 세계에만 집중한다면 정보가 사라진 일종의 자폐상태가 되고 말 것이다. ...후략...) 

<과학칼럼 '귀뚜라미식 대화법' 중에서. 글쓴이 : 김대수.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생명과학>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남의 얼굴은 뇌리에 뚜렷이 잘도 각인되면서 자신의 얼굴은 그렇지 못하듯이 자신의 목소리도 녹음한 걸 들으면 내 귀로 듣던 내 목소리와는 사뭇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 늘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군요.

이것은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이 바로 자신일 것 같지만 실은 가장 알 수 없는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과도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가장 낯익으면서도 실은 가장 낯설은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일개 미물이라고 생각했던 귀뚜라미도 이렇게 현명한 방식으로, 어쩌면 그건 본능일지도 모르긴 하지만, 어쨌거나 자신의 소리엔 귀를 닫고  남의 소리엔 귀를 열어 들을 줄 아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나는 과연 그렇게 살아왔는가에 대해서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앞으로 귀뚜라미를 닮으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자신을 끝없이 반성하게 만드는, 공감을 느끼게 하는 글이어서 옮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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