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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억에 남는 혼배 성사에서 주례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18 조회수728 추천수3 반대(0) 신고
 

 한 친지의 혼배 미사에 갔다가 주례신부님의 주례사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주례사는 대개 결혼하는 당사자 들으라고 이야기 하는데 주례사가 귀에 들어올 신혼부부가 얼마나 될까 싶어 이 혼배미사에 오신 분들에게 한 말씀하신다고 서두를 꺼내십니다.


  부부 생활을 비유하자면 산울림과 같습니다. 이쪽에서 외치는 소리가 조금 있으면 여지없이 똑같이 울립니다. ‘야호’하면 저기서도 ‘야호’하고, ‘사랑해’ 하고 외치면 저기서도 금방 따라서 ‘사랑해’합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는 먼저 해야만  들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또 수영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영은 아무리 땅위에서 연습해도 소용  없습니다. 실제로 물속에 들어가 몸을 움직여야 헤엄을 칠 수 있습니다. 물속에서 머리를 한번 세워보세요. 그럼 몸이 가라앉습니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은 머리를 물속에 숙이고 수영합니다. 숨 쉴 때도 머리를 쳐들지 않고 비스듬히 입만 벙긋합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속에서 수영하듯 머리를 숙여야 방향잡고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또 두바이 사막을 여행하는 자동차 크루즈에 가보면, 출발 전에 반드시 타이어에서 바람을 뺀다고 합니다. 팽팽한 타이어로는 푹푹 빠지는 사막을 달릴 수 없다고 합니다. 예, 맞습니다. 부부 생활은 마치 사막을 달리는 여행과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 모래 늪에 빠져 허우적댈지 모릅니다. 그러니 출발선상에서부터 미리 바람을 빼놔야 합니다. 일단 사막에 들어서면 계속 움직여야 하니까 멈추면 모래 늪에 잘 빠지게 됩니다. 그러니 두 신혼 부부도 이 자리에서 한껏 들어가 있는 자존심이라는 바람을 조금씩 빼라고 하셨습니다.


 어디서 자주 듣지 못한 비유 말씀을 하시니 신선하고도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아마 신혼부부도 이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왔을 겁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들이 집사람을 소박하는 율법에 대해 예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은 것입니다. 그 당시는 심각할 정도로 남성우월사회였습니다. 그래서 여인들이 소박맞게 되면 친정에 돌아가거나 홀로 살아야 되는데 친정에서는 남부끄럽다하여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거의 내쫓겨나면 살아가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여인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이혼장을 써주라고 율법에 명시한 것입니다. 조금이나마 명예를 보호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시대가 변하다보니 남자들이 각가지 핑계를 대어 부인을 소박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여러 율법학자들이 제 의견을 내었나 봅니다. 신명기 24,1 “그 여자에게서 추한 것이 드러나 눈에 들지 않을 경우, 이혼 증서를 써서 손에 쥐어 주고 자기 집에서 내보낼 수 있다.” 의 내용을 샴마이 학파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엄격한 소박 규정을 적용했습니다. 간음한 경우에만 적용했습니다. 이에 반해 힐렐 학파는 “풍기문란, 음식을 태우는 것, 계명을 어기는 것, 남편 눈에 거스르는 모습” 등을 이유로 해서 이혼장만 써주면 소박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부인을 소박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례로  역사가인 요세푸스도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본부인을 소박했습니다. 한마디로 마음만 먹으면 어느 때라도 소박이 가능했습니다. 자기 부인보다 이쁜 여자만 보아도 갖은 핑계를 내어 소박했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혼인 불가해소성을 창세기 말씀을 들어 말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

 

 마태오복음 저자는 유대 공동체가 이해하는 한 가지, 불륜의 경우엔 이혼해도 된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마르코복음이나 루카복음의 경우에는 어떤 예외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샴마이 학파보다 더 엄격하게 적용하십니다.


 요즘처럼 네 쌍 중에 한 쌍이나 이혼하는 사회 속에서 무엇보다 가정 붕괴는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혼 사유도 성격 차이 가 30%를 차지한답니다. 사실 성격차이라는 핑계는 얼마든지 해소할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 주례사의 말씀처럼 서로 자신을 낮추려 한다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해 봅니다. 결혼 생활에 어디 어려움이 없겠습니까만은 하느님께서 맺어주시는 聖事라는 것을 안다면 좀 더 거룩하게 지킬 수 있겠습니다.  


 독신문제도 그 당시 사람들이 혼인 적령기를 지난 예수님과 제자들의 독신을 문제 삼아 말이 많았나 봅니다. 이에 예수님은  자유로운 결단으로 독신을 택한 것이며, 이미 들어와 있고 장차 완성될 하느님 나라의 백성의 모습을 위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톨릭 사제와 수도자들은 지금도 독신을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서 부부 생활을 단념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분들의 어려움을 헤아려 주어야 합니다. 그분들의 각오와 신념을 가꾸고 지켜 주어야 하는 것이 평신도의 몫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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