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해질 무렵 산을 내려오다가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18 조회수771 추천수12 반대(0) 신고
8월 19일 연중 제19주간 토요일-마태오 19장 13-15절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해질 무렵 산을 내려오다가>


해질 무렵 산을 내려오다가 한 사찰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여러 스님들과 마주쳤습니다. 보아하니 학생 스님들 청소시간인 듯 했습니다. 소박한 회색빛깔의 옷, 맨발에 고무신, 빡빡 깍은 머리, 밑으로 내려 깐 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앳된 얼굴까지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산을 내려오면서 한참 생각했습니다. 저분들이 저리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저토록 단순하게, 가난하게, 소박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끔씩 들르는 수녀원 양성소도 마찬가지입니다. 또래 처녀들이 세상모르게 쿨쿨 자고 있는 꼭두새벽부터 깨끗이 단장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성당에 앉아있는 예비수녀님들 바라보면 약간은 측은해보이기도 하고 약간은 안쓰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분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바로 이런 것 때문이겠지? 보다 높은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이 믿는 보다 높은 가치관을 추구하기 위해 때로 젊음이든, 인생 전체이든,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인가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그분들의 얼굴이지만, 어찌 그리도 고운지, 어찌 그리도 맑은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삶의 에너지를 영적인 곳에 집중시키다보니, 그러기 위해서 삶을 최대한 단순화시키다보니, 그분들 얼굴은 어찌 그리도 때깔이 좋은지 모릅니다.


별로 잘 먹는 것도 없는데도 윤기가 돌고 빛이 납니다. 생활이 간소하다보니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기뻐합니다. 행복해합니다. 마치 어린이들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우리가 상상을 초월하는 평수의 아파트에 살면서, 우리 같은 사람 평생 만져보지 못할 많은 액수가 은행잔고에 남아 있으면서도, 이 땅에서 못 이룬 것 하나 없이 모든 것을 다 이뤘으면서도 ‘나같이 불행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하는 얼굴로, 그래서 마치 연옥벌이라도 받고 있는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반대로 가진 것 하나 없으면서도 걱정하나 없는 왕자처럼, 모든 꿈을 다 이룬 황후처럼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왜 그런지 팍팍하기 그지없습니다. 없이 살던 시절, 그래서 고생이 많던 시절에도 이렇지는 않았던 것 같았는데...


행복지수는 경제성장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하늘나라, 우리 자신을 낮춰야, 우리 자신을 작게 만들어야 쉽게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복잡한 우리 삶을 보다 단순화시켜나갈 때 하늘나라는 더욱 가까이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하느님은 자비의 하느님이시니, 그 하느님께서 우리 인생길을 활짝 펴주실 것이니, 그저 그분 은총의 손길 안에 하루를 지내려는 소박한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보다 자주 내려놓음을 통해, 보다 밑으로 내려감을 통해, 보다 작은 자 되려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어린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