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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밥알이 밥그릇에 있어야 아름답지 . . .[정호승 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19 조회수727 추천수12 반대(0) 신고

 

 

 

 

[밥알이 밥그릇에 있어야 아름답지 얼굴이나 옷에 붙어 있으면 추해 보인다]

 

 

 

절이나 암자에 가면 가끔 헌식대를 찾아 볼때가 있습니다. 

헌식대는 공양간 근처나 절 뒷마당 등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구석진 곳에 놓여 있습니다.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것도 있고,

그루터기를 이용한 것도 있고,

일부러 자연 화강암으로 멋지게 만들어 놓은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헌식대 위에 놓여있는 밥알들이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고

몹시 추하게 느껴졌습니다. 

 

헌식대란 절 가까이 사는 새나 다람쥐 등을 먹이기 위해 일부러

절에서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그런대 헌식대 위에 놓인 밥알 하나하나가 마치 개수대에 버려진 것처럼

몹시 더럽고 추하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새나 다람쥐의 눈으로 보면 그 밥알이 고맙고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비록 헌식대라 할 지라도 원래 밥이 있어야 할

제 본연의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진 것입니다.

 

밥은 원래 인간이 먹기 위해 지은 것입니다.

따라서 밥은 밥그릇에 담겨 있어야 합니다.

밥은 밥그릇에 담겨 있어야 인간의 생명을 돌보는 제 값어치를 지닙니다.

 

그런데 밥이 모셔져야 할 마땅한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데 있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밥이 개밥그릇에 담기면 그만 더럽고 초라한 개밥이 되고 맙니다.

 

밥알이 사람의 얼굴이나 옷에 붙어 있어도 그만 추하게 느껴집니다.

밥이 밥그릇을 벗어나 헌식대 위에 놓인 것은 제 본연의 자리를

잃음으로써 동시에 제 본연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조차 잃은 것입니다.

 

아마 헌식대 위에 생쌀이나 좁쌀, 보리쌀 등의 곡식이 놓여 있었다면

그렇게 추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밥을 먹다가 땅바닥에 흘린 밥을 잘 주워 먹지 않는 것도

더럽고 불결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밥이 제자리를 벗어나 이미 밥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보름달이 휘영청 뜬 바닷가에 버려진 흰 쌀밥이나,

남의 집 대문 앞에 뿌려진 제삿밥이 신성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지저분하고 추하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그러한 까닭입니다.

 

세상 모든 사물에는 제 있을 자리가 다 정해져 있습니다.

간장종지에 설렁탕을 담지 않고,

설렁탕 뚝배기에 간장을 담지 않습니다.

 

버섯이 아무리 고와도 화분에 기르지 않습니다.

 

인간도 자기 인생의 자리가 정해져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그 자리를 소중히 여기고 제대로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시를 쓰는 시인의 자리을 소중히 지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나'라는 마음속에 있어야지

다른 인간이나 짐승의 마음 속에 있으면 내가 아닙니다.

 

     * 정호승님의 산문집[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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