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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64) 뱃고물에 주님 달게 주무시듯 / 박보영 수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19 조회수618 추천수5 반대(0) 신고

 

위장에 문제가 생겼다.

한참을 미적대다 떠밀려서 병원에 갔다.

내시경 필름을 얹고 형광등 스위치를 올리던 의사는 심각한 얼굴로 몇 번 잔기침을 했다.

그리고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당장 입원해 위 점막 바깥 부위를 절개하고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나는 대답했다.

"일주일 후에 개강하는 본당 성서교실에서 첫 한 달 창세기는 내가 해야 합니다."

의사는 실소했다.

그리고 다시 차트를 설명하려고 처방전을 보다가

"어! 잠깐만..... 1센티미터 이하네요."

하느님은 정말 애꿎다.

1센티미터 이하를 너무나 긴장한 탓에 10센티미터 이하로 잘못 읽은 것이다.

결론은 6개월 후 재검.

 

3시간 걸려 버스를 타고 수녀원에 도착했다.

저녁식사시간, 식탁에 둘러앉아 기대와 설렘으로 다가오는 성서반 개강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도 이야기에 끼어들어 200% 태연하려 했다.

 

그러나 병원 갔다온 거 어찌 되었냐는 수녀님들의 물음에

별것 아니라고,

그냥 위에 작은 용종이 발견되었다고,

6개월 후에 재검해야 한다고,

애초에 일체 비밀에 붙이려던 결심과는 달리 술술 자백해버리는 것이었다.

자그르르 이어지던 웃음소리가 돌연 그치고,

얼음장 같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날 일과가 끝났다.

 

나는 점점 더 태연자약의 수위를 높여 명랑 쾌활했지만 그것은 진공이었다.

밥도 씩씩하게 한그릇 뚝딱했지만 첫 술부터 식도가 꽉 메었다.

쓸고 걸레질하는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가고 뽀드득뽀드득 소리나게 설거지를 했지만 힘이 더 들어가는 만큼 나는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거기 없었다.

밤이면 배에 손을 얹고 오래 침묵하다가 스르르 잠들었다.

 

사흘째 되던 날 밤, 나지막한 소리가 떨구어져 나왔다.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지금 데려가도 좋습니다."

 

침대 맞은 편 잘 보이는 곳에 놓인 오상의 비오 신부님 상본은 그 사흘 동안 내 방을 지배하던 진공상태를 견디게 해 준 산소통이다.

하느님은 손도 까딱하지 않으셨다.

숨소리도 내지 않으셨다.

그런데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무의식 저 밑바닥에서부터 찾아내었다.

마치 요나가 큰 고기 속에서 사흘을 지낸 것처럼.

 

나는 나를 토해낸 심연의 물고기 뱃속에서 새로 태어났다.

 

다음 날 아침미사,

영성체 후 자리에 앉은 나는 성체가 위 점막에 닿는 느낌을 처음 알아챘다.

위가 민감해지고, 하느님을 모시는 내 영혼이 섬세해진 것이다.

내 위장 안의 작은 용종, 1센티미터도 안되는 미미한 공간 안에 하느님이 앉아계신다고 느꼈다.

 

마치 풍랑 치는 바다 위 뱃고물에 주님 달게 주무시듯!

 

두려워 말라고,

풍랑더러 잠잠하라고 말씀하시던 그분 내 주님이!

 

그로부터 4년이 지났고 내 친구 용종은 아직도 키가 안 자랐다.

의사는 말한다.

평생 그렇게 가족이려니 하고 데리고 살라고.......

 

        글쓴이 :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 박보영 수녀님

                    <출처 : 가톨릭 다이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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