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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 > 빌어먹을 낚시!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22 조회수896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빌어먹을 낚시!


   나는 본래 낚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싫어한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무슨 강태공이라고 멀쩡한 대낮에 낚시만 하는 이들, 그리고 주말이면 으레 낚시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은 나는 괜히 미워한다. 물론 그들 모두에게 건강한 취미에서 오는 좋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러나 미안하게도 내가 보기에는 무슨 놈팡이들 처럼 보여 낚시꾼들을 싫어한다.


   섬마을 선생을 7년이나 했으면서도 나는 낚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첫 번 3년은 아이들 따라 망둥이 낚시를 서너 번 한 것이 고작 이었으며, 두 번째 4년은 배를 타고 두어 차례 시도를 했었으나 그것도 순전히 타의에 의해서였다. 차라리 술병 들고 뱃놀이하는 것이 더 좋았으며 아니면 밭에 가서 땅을 파는 것이 차라리 내 적성에 맞았다.


   한번은 술이 과한 상태에서 얼떨결에 밤낚시를 떠났는데 일단 배를 타고 나니 금방 되돌아올 수 없는 암담한 처지에서 갈등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덩달아 낚싯대를 던졌지만 전혀 느낌이 오지 않았으며 결국은 내가 재촉을 하여 중간에 서둘러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 바다의 고기를 다 준다 해도 싫은 것은 그냥 싫은 것이다! 그래도 그때 막판에 이런일이 있었다.


   처음부터 취미가 없던 나는 미리 준비해 간 소주만 마셨는데 아마 대낮에 몽땅 마셨던 막걸리 탓인지 예고없이 갑자기 뒤가 마렵게 되었다. 그래서 한 손엔 낚시줄을 잡고 고물에 불안스럽게 앉아 엉거주춤 뒤를 봤는데 생전 처음 그런 식으로 뒤를 보자니 보통 어색한 게 아니었다. 그때 누가 손가락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나는 그대로 바다에 퐁당 빠질 판이었다.


   1차 배설이 끝나고 2차를 준비할 때였다. 갑자기 손에 들린 낚싯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데 순간 몸이 한쪽으로 기울던 나는 나도 모르게 낚싯줄을 세차게 잡아당기게 되었다. 그런데 낚싯줄이 보통 묵직한 게 아니었다. 결국 바지도 제대로 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줄을 당기고 보니 팔뚝보다 훨씬 더 긴 농어가 걸려 있었다. 아마 변 냄새를 맡고 유인된 모양이었다!


   함께 간 학부형들은 나보다도 더 좋아하며 선생님이 뒤를 보다 낚은 농어라 해서 야단들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창피했다. 안 잡힐 때는 잡히지 않는다고 기분이 유쾌하지 못했는데 고기가 큰 놈이 잡혔어도 왠지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로 아마 30년 가까이 낚시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9월이었다.


   소록도와 마주 보고 있는 녹동항에는 바다 낚시를 하기 위해 전국에서 낚시꾼들이 모여드는데 녹동성당의 젊은 신부도 낚시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기회만 있으면 낚싯대를 들고 바닷가로 달려가 낚시를 하는데 그와 취미가 맞는 신부들은 그래서 녹동을 자주 찾아왔다. 한번은 우리 교구의 노인 신부님이 오셨을 때였다. 어른이 오셨다 해서 맘에도 없는 낚싯배를 함께 탔는데 이게 정말 고역이었다.


   재미도 없는 낚싯대를 들고 새벽 6시에 출발하여 하루 종일 뱃전에 앉아 있는데 이게 얼마나 지루하고 불유쾌한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그 심정 모르리라. 공연히 따라왔다는 후회를 수 십 번도 더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햇볕은 따가운데 어디 누울 데는 없고 종일 낚싯대만 쳐다보고 있으려니 속된 말로 이게 무슨 미친 지랄인지 오장육부가 다 뒤틀리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그렇게도 인내심이 없는 노인 신부님이 예닐곱 시간을 오직 낚싯대에다만 시선을 두며 꼼짝하지 않고 버티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원래 그분은 식당에 가셔도 재미가 없다 싶으시면 단 10분도 되지 않아서 당신 잡수실 것만 대충 잡수시고는 “나, 갈란다” 하시면서 일어서시는 것이 예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날 무척 긴장을 했었다.


   그런데 조절이 잘 안 되시는 소피가지 참으시면서 어떻게 그렇게 진득하니 버티고 계신지 참으로 신기할 정도였다. 아마 당신이 좋아하시는 것을 위해서라면 새벽이건 밤중이건 문제가 아니었으며, 그리고 기다리는 시간이 열 시간이고 스무 시간이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식이었다. 그 날 신부님은 하루 종일 작은 간자미 한 마리 잡으셨는데 그분은 충분하게 만족하셨다.


   문제(?)는 오히려 내 쪽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두 신부님이 가져온 술만 이것저것 섞어 가며 계속 마시다가 그것도 모자라 혼자서 춤추고 노래 부르며 관중도 없는 원맨쇼를 하였는데 이상한 것은 내 낚싯대에만 고기가 몰려와 이깝을 톡톡 건드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각본에도 없는 돔을 큰 놈으로 여러마리 낚았는데, 그날은 내가 뒤를 본것도 아니었다!


   나중에 노인 신부님은 날 보고 음흉스럽다고 눈을 흘기셨는데 사실 나는 잡고 싶어서 고기를 잡은 것도 아니었으며 또 무슨 기술이 있어서 돔을 잡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를테면 단지 일진이 좋은 것뿐이었는데 가만 생각하니 혼자만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고, 고기까지 다 휩쓸었으니 그 날은 완전히 내 생일날(?)이었다.


   그러나 낚시는 역시 내 체질이 아니다. 예수님도 낚시를 즐기셨고(?) 그리고 그분의 제자들도 거의가 어부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낚시가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데도, 싫은 것은 그냥 싫은 것이다! 누가 혹 돈 백만 원씩 허리춤에 질러 준다면 몰라도 다시는 배 타고 낚시하러 가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노인 신부님은 속도 모르시고, 내가 그 날 배에서 술 마시고 춤추고 했던 것이 보기가 좋았다고 하시면서 언제 다시 한번 바다에 나가자고 하셨다. 나에겐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그리고 신부님이 오신다면 어쩔 수 없이 배를 준비하긴 해야겠지만, 그 빌어먹을 낚시를 왜 좋아하시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누가 횟감만 준비해 놓고 술이나 한 잔 하자는 분은 혹 안계실까?

http://my.catholic.or.kr/vegabond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소록도에서온 편지)중에서/강길웅 요한 신부

 

                                  천주님을 좋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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