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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22 조회수668 추천수3 반대(0) 신고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에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


  아마 이 구절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정도로 유명한 구절이다. 그리고 그 센 강조를 조금이라도 완화시켜 보려고 많은 시도를 하기도 했다. 개신교계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로 그 부류에 속하는데 그들은 낙타(약대)라는 단어가 밧줄을 뜻하는 단어와 비슷하니 아마 밧줄을 낙타로 잘못 적은 것 아닌가 여겼다. 바늘귀의 설명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여러 문들 중에 문이 협소해서 ‘바늘귀’라는 별칭을 얻은 문이 있었다고 말하며, 낙타가 바늘귀라는 문을 지나가려면 모든 짐과 사람이 내려야만 겨우 낙타만 통과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부자가 모든 재산을 나눠 주어야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이를 비유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바늘귀는 실제 재봉에 쓰는 바늘의 귀가 아니라 무기인 창에  솔기를 다는 구멍이 있는데 이를 바늘귀라고 불렀다는 설명도 추가한다. 이러한 설명은 어찌 보면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 해보려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이 대목 뒤에 바로 나오는 질문이 제자들이 “그러면 누가 구원 받을 수 있는가?”이다. 제자들은 그 시대의 유대인들이 지녔던 의문을 대표해서 묻는 것이다. 신명기에서 재물과 부자를 하느님의 축복으로 말했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전혀 새로운 가르침에 의아했던 것이다. 축복받았다고 여겨지던 사람들마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과연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 갈 것인가?


  인간의 어리석음 중에 하나는 바로 모든 대상을 소유로 보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주 하늘나라와 영생을 소유의 대상으로, 획득 가능한 그 무엇으로 보았다. 특히 부자 청년은 자기가 율법에서 말하는 계명을 다 지켰으니(예수님께서도 인정하시지만) 제 생각으로는 충분할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놓친 점이 있을지도 모르니 선한 스승님께서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그의 눈에는 재물처럼  하늘나라도 소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인 것이다.


  제자의 질문에 예수께서 “눈여겨보셨다.(emblepas)"라는 단어를 저자는 쓴다. 이 단어는 예수님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중요한 대목을 말하실 때 저자가 쓴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부자에 대한 경고를 단순히 부의 축적을 경계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면 무엇인가 옹색하다. “소유” 와 “따름” 이 서로 병존할 수 없는 요구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제대로 된 “따름”엔 다른 것을 모두 비워야 한다.


 ‘앤드류 마리아’ 가 지은 이야기 중에서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는 제목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하느님의 뜻을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겠다.


한 신비가가 주님의 방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주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주님은 문을 열지 않고 닫힌 문 안쪽에서 말씀하셨다.

“뭐라도 가지고 왔느냐?”

“네, 제겐 저의 덕행이 한 자루 있습니다.” 그래도 열어주시지 않았다.

“네, 주님. 저의 좋은 행실과 거룩한 공적이 한 자루 있습니다.”

“아주 고무적이야. 하지만 아직 문을 열어 줄 수 없네.”

“주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저의 명상과 간절한 기도가 한 숟가락 있습니다.”

“너 참, 생각이 깊어졌구나. 하지만 아직 문을 열어 줄 수 없네.”


신비가는 한 번 더 떠났다가 밤이 이슥해서야 돌아왔다. 그는 다시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주님, 제발 들여보내 주십시오.”

“뭐라도 가지고 왔느냐?”

“주님, 제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들어오너라!” 


드디어 주님은 이렇게 소리치며 그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덕행과 공적, 명상과 기도마저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는 예화이다.  주님을 제대로 따르려면 모든 종류의 소유욕을 덜어내야 한다. 그저 주님과 일치하는 삶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이 된다. 하느님은 인간더러 본성마저 바꾸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눈으로 하느님 나라의 사정을 “눈여겨보라(emblepo)”는 요구이다. 모든 것을 제 것이 아닌 선물로 감사히 받아들이라는 요구이다.  공짜로 받았으니 공짜로 내 놓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 더 큰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가르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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