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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166) 바람 이야기 / 산굼부리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22 조회수397 추천수3 반대(0) 신고

 

 

(84) <제주기행> 산굼부리
작성자   유정자(pink45)  쪽지 번  호   99514
작성일   2006-05-16 오전 12:54:29 조회수   173 추천수   9

 

 

5월 초순에 사흘동안 제주도로 여행을 가면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비행기 타는걸 무척 두려워 했습니다.

부부동반하여 외국에 나갈 기회가 여러번  있었지만 비행기 타는게 두려워 그만 두곤 했지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비행기 탔다가 사고나서 죽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였습니다.

아이들 자라서 부모없이도 벌어먹고 살 수 있도록 해놓기 전에는 절대로 비행기 타지 않겠다고 공언했죠.

 

사실 비행기 사고가 지상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에 비해 극히 확률이 낮다는 건 들어 알고 있지만, 내 가까운 사람이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걸 보면서 더 그랬습니다. 우리 집안엔 예전에도 가까운 친척 아저씨 중에 조종사들이 있었고, 지금도 내 형제가 조종사라서 비행기가 그리 낯선 것도 아닌데 그런 이유로 기피했더랬습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이륙할 때 부웅 뜨는 그 기분은 참 묘했지만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답니다. 소음 때문에 귀가 아프다 못해 애리고, 머리가 터져나가는 듯 했습니다. 귓속에선 찌르륵대는 소리가 자꾸 들렸지요.

그런데 내동생은 어떻게 20년을 넘게 비행기를 몰았을까 싶더군요.

 

바로 눈앞에 달린 화면에서 군산, 광주, 목포, 하면서 비행기가 지나가고 있는 화살표를 보면서 또 시계를 보면서 언제나 55분이 지나나 그것만 보고 있자니 죽을 맛이었죠.

그러면서도 간간히 창밖을 내다보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구름만 보이는데, 예전에 읽었던 소설속의 대화 한토막,

승객이 조종사에게 구름이 얼마나 멋있던가요? 하고 물었을 때, 구름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로 밖엔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제주 공항에 내려서도 한시간 동안은 머리가 아파 혼났습니다.

요즘 제 몸 컨디션이 안좋아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지요.

아들은 젊어서 그런지 건강해서 그런지 픽픽 웃기만 하더라구요.

아들도 대학에 입학하던 11년전 일학년 때, 졸업여행을 미리 제주도로 가서 그때 한 번 타보고는 처음인데 끄떡없더라구요.

 

아들과 둘이서 간 여행인데  집에서 떼어가지고 간 네비게이션을 렌트카에 달고 지도를 보아가며 온 제주도를 누비고 다녔지요. 

서귀포에 가서 잠수함을 타고 40미터가 넘는 물속으로 들어갈 적엔 이러다 물귀신 되는건 아닌가 방정맞은 생각에 묵주를 꽉 움켜쥐기도 했구요.

열기구를 타고 150미터 하늘로 올라가 보기도 했구요.

 

다시 성산포로 가는데 100리가 넘더라구요.

40킬로가 넘으니까....

성산포에선 유람선을 타고 일출봉 앞으로 해서 우도를 돌아오는 뱃길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과 푸른 바닷물을 갑판에 나와서 보았지요.

10년전에 동창들과 한려수도에 갔을 적엔 너무 무서워 갑판에 못나갔었는데 그때보단 많이 나아진 편이었죠.

많은 사람들이 안전불감증이라면 저는 유난히 안전염려증이 심한 편이라서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참을 달려 네발 달린 오토바이를 타러 갔는데 도저히 저는 탈 용기가 없어 예매했던 표 두개를 아들보고 다 타라고 했답니다. 한장에 23000원짜리 표를 버릴수는 없어서요. 본전이 아까운 생각에 먼지바람이 자욱히 날리는 코스로 사정없이 아들을 내몰았습니다. ㅎㅎㅎ

그리고는 올인 하우스가 있다는 섭지코지를 향해 달렸습니다.

관광객들이 꽤 있더라구요.

그 중에는 단체관광을 온 일본인과 중국인들도 많았습니다.

이병헌과 송혜교의 사진들이 즐비하더라구요.

그리고 멀리 보이는 하얀색 등대까지 올라갔다 내려왔죠.

 

그리고 북제주군에 있는 콘도로 돌아오는 길은 정말 멀었습니다.

가로등도 없는 캄캄한 길을 전조등에 의지해 오는데 무척 낯설고 이상한 곳이 보였습니다. 어두움 속에서도 시커멓고 거대한 돌탑 같은 것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하여 서있는걸 보고 제게 뭐지? 하면서 지나가는데 얼핏 (산굼부리)라는 글자가 보였습니다.

산굼부리?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습니다.

제주도 방언인가 보다고 하면서 너무 이상한 곳이니 내일 낮에 꼭 와보자 하면서 지나갔지요.

다음날 첫번째로 그곳에 가는데 아들이 길 표지판에 써있는 영어를 보더니 분화구네! 하더군요.

저야 꼬부랑 글자는 모르는 게 태반이니 봐도 까막눈인데 그래도 아들은 알아보더라구요.

 

아! 분화구를 제주도 말로는 산굼부리라고 하는건가 보다 하고 그리로 차를 몰았습니다.

컴컴한 밤에는 무척 음침하고 무서워 뭔가 어마어마한 것이 숨어 있을 것처럼 생각했는데 , 낮에 보니 시커먼 색깔의 거대한 둥근 돌을 삼단으로 쌓은 꼭대기에 역시 새카만 꼭지 모양이 있고 덩굴 식물로 뒤덮인 일종의 돌탑같았습니다.

그 거대한 돌탑이 아마 7,8개는 되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 안 저쪽에는 아마도 태고의 신비가 숨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안쪽의 휴게소 기념품 가게등 몇개의 건물들도 모두 새카만 빛깔의 돌로 지었는데 상당히 예술적이고 신비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분화구는 아득히 보이는 산 꼭대기에 있다고 했습니다.

올라가는 길바닥에도 타이어를 가늘게 썰은 시커먼 것으로 덮여있어 주위가 온통 꺼먼색 일색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꼭대기엔 뭔가 참 신비한 것이 있을 거란 생각을 했죠.

분화구라니까 시커먼 용암이 흘러넘치다 굳어버린 아가리가 입을 벌리고 있겠지.

꼭대기에 아주 조그맣게 서있는 건물은 분명 분화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입구일거야. 시커먼 아가리 그 아래엔 아마 용암 덩어리가 엉겨붙어 있을 거야.

그런데 허위단심 올라간 꼭대기의 건물은 문이 잠겨 있었고, 써있는 글자를 보니 분화구도 뭐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너머 발아래 둥그렇고 커다랗게 파여있는 골짜기가 바로 분화구라는 겁니다.

그냥 잔디가 조금 깔려있는 움푹 파여있는 산골짜기,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었습니다.

아! 그때의 그 허망함이란!

 

아들이 핀잔을 주더라구요.

엄마 뭘 기대했어요? 언제인지도 모르는 옛날에 이미 사화산이 되었는데 용암은 무슨 용암, 여기가 활화산도 아니고 휴화산도 아닌데.......

 

그렇군요.

난 분화구라 해서 용암만 생각했더랬죠.

실망해서 맥없이 터덜거리며 내려오는 길에 잔뜩 피어있는 제비꽃을 꺾어 하릴없이 꽃반지를 만들어 손가락에 끼웠더니 참 예쁘더군요.

왜 보석반지보다 난 꽃반지가 더 예쁘고 좋은지 모르겠더라구요.

보라색 앙증맞은 꽃반지를 끼고 동심에 젖다 보니 허탈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죠.

미니미니랜드, 한림공원등 수많은 곳을 구경했지만 그토록  원초적 호기심을 자극했던 산굼부리는 잊지못할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이 되었습니다.

제비꽃이 유난히 많았던 산굼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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