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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겨울애(冬雪愛)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23 조회수615 추천수3 반대(0) 신고

                  

 

                             겨울애(冬雪愛)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만든 인기드라마 ‘겨울연가’ 덕분에 올 겨울은 따뜻할 것만 같습니다. 가상의 드라마지만 그 사랑이야기 때문인지 수많은 이들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연령과 세대를 뛰어넘어 그 드라마에 외국인들이 매혹되는 것을 보면 사랑이란 언어는 만국공통어임을 실감합니다. 이 겨울에도 우리 삶 구석구석까지 사랑의 연가가 울려 퍼지기 바랍니다. 다만 환상적인 측면이나 비극이 주는 애틋함만이 아닌 기쁨과 희망, 그리고 생명을 주는 참된 사랑의 노래가 우리 주변을 더욱 다양하게 채우기를 바랍니다.


   겨울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군대에서 체험했던 따스한 숨결이 가슴을 가득 채웁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쯤 경기북부지역에서 저는 군복무를 했습니다.


   그날 밤 수은주는 정확하게 영하 28도였습니다. 참 추웠습니다. 눈보라는 무척 거셌고요. 바로 그날, 소위였던 저와 함께 예닐곱의 사병들이 한 팀이 되어 적의 침투가 예상되는 곳에 매복하는 임무(훈련)를 부여받았습니다. 미리 파 놓은 참호(구덩이)에 해가 기울자마자 바로 배치되었습니다. 이제 밤을 꼬박 새워야 되었습니다. 입대한 지 아직 1년도 안 되었던 제게 매복은 정말 힘들고 긴장의 연속인 일이었습니다.


   한두 시간 지났을까요. 병사 하나가 “소대장님, 저희가 지키고 있을 테니 눈좀 붙이세요”라고 저를 배려하는 눈빛으로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의 말이 매우 고맙게도 들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 눈을 부릅뜨고서 모범을 보이겠다는 태도로, 확고한 경계자세로 몇 시간을 보냈습니다. 눈은 하염없이 어깨에 쌓이고 바람은 불어대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알고 보니 그 소리는 저에게 잠시 눈을 붙이라고 유혹(?)했던 고참병사의 코고는 소리였습니다. 그 병사는 자신이 원하는 잠자리에 저도 동참시키고자 했던 것이지요.


    보통 군대라면 그 병사는 무척이나 심한 기합(얼차려)을 받았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배웠지요. 한데 그날은 저에게 무엇인지 모를 여유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와 함께한 병사들의 존재가 저의 일부분인 양 느껴졌답니다. 코고는 녀석과 경계자세로 졸고 있는 녀석, 또 저에게 자신은 졸지 않고 있음을 보이려 노력하는 녀석들의 약간씩 움직이는 소리들 등, 이들의 모양과 소리들이 내리는 눈과 부는 바람과 하나되어 마치도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저를 감동케 했습니다. 저의 존재이유가 바로 그 순간만은 그들을 위함에 있다는 것이 느껴졌던 것입니다.


   사람에게 ‘왜 사느냐?’라고 물을 때 온몸과 마음으로 “바로 당신 때문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설령 그가 나를 흡족하게 하는 재능과 실적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죄스럽게 만들지라도 말입니다. 그날 눈을 지붕 삼아 함께 보냈던 우리들의 모습은 그림이 되어 지금도 저의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다들 어디에 있는지…?


   또 겨울이 다가온다는 뉴스를 접하면 “아이쿠, 벌써!” 하며 제 본분이 되어버린(생각만이긴 하지만) 거리의 노숙인들에 대한 부담(?)이 고개를 듭니다. 지난해 겨울 참으로 추웠던 설날 이브에 서울역 지하도 무료급식장에서의 제 모습이 잡혔습니다. 계속 봉사해온 이들은 저의 밥 푸는 실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장 힘겹고 어렵다(?)는 숟가락을 나누어주는 직무를 부여받았습니다.


   매일 500명 정도 되는 이들이 단 40분 만에 식사를 마치는 놀라운 장관을 펼칠 수 있도록 열심히 숟가락을 전해주었습니다. 한참을 정신없이 나누어주다 보면 새로운 이들이 손을 벌리고 있고, 또 어느새 식사를 마친 이들이 한 번 더 줄을 서는 재빠름을 과시합니다. 이제 어느 정도 할 일을 다 했다 생각하고 지하도 계단에서 식사하고 있는 이들 옆에 앉아서 잠시 상념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왼쪽에서 왁자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울산에서 부산에서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였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형제가 저를 보고 굉장히 친밀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에 귀를 쫑긋하였는데 그 형제의 입에서 ‘일산과 여의도, 그리고 대통령의 이름들’이 줄줄 쏟아져 나왔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이야기하는지, 그 순간 저는 말하는 내용이 설령 뜻을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하고 문장이 제 순서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의 존재가 제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사람에겐 그 어떤 수준 있는 말도 중요하지만 더욱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고, 그 마음을 전하려는 열정임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무척이나 열심히 이야기를 끝마친 그 형제는 들어주던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려고 자리를 떴습니다. 저는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지금도 모릅니다. 하지만 압니다, 그는 나와 함께 그 순간을 살았음을. 그와 참다운 대화를 나누고 나자 다른 봉사자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신부님, 무슨 대화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셨습니까?”


   어느덧 다시 그 형제를 만날 수 있는 겨울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때 그 형제를 재회할 수 있을까요?

다가오는 겨울이 담고 있는 씨앗들을 몇 가지 나누어보겠습니다.

겨울은 이래서 좋습니다. 사람이 옆에 있어도 좋은 계절입니다. 여름에는 옆에 사람이 다가오려 하면 몸을 움츠리며 조금이라도 멀리하려고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저절로 필요로 하는 사회는 참 좋은 세상이 되는 첫걸음입니다.(친교)


   겨울은 이래서 좋습니다. 겨울은 마음속 깊은 데서부터 ‘봄’을 강렬히 원하게 해줍니다. 희망을 가진 자에게 좌절은 없습니다. 봄에 담긴 수많은 의미를 다시 각자의 가슴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음은 그 자체로 축복이요 행운입니다.(희망)


   겨울은 이래서 좋습니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음미해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죽음 속에서 생명을 느끼게 해줍니다. 겨울은 이처럼 생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준비입니다.(평화)


   겨울은 이래서 좋습니다. 눈(雪)이 있어 좋습니다. 특히 온갖 다양한 자연의 모습과 색깔이지만 함박눈에 덮일 수 있어 좋습니다. 온갖 부족한 인생의 파편들을 눈은 포근하게 가려줍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우리의 부족함과 한계, 그리고 죄악까지도 당신의 자비로 덮어주시는 것처럼 말입니다.(관용)


   겨울은 이래서 좋습니다. 제가 태어난 날이 있고 저의 영명축일이 있어서 좋습니다. 당연히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절도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하느님 창조의 신비를 깨닫게 해주기에 더욱 좋습니다. 생명의 원천을 떠올리게 해주기에 말입니다.(믿음)


   겨울은 이래서 좋습니다. 나를 감싸고 있는 주변의 참모습을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아름답고 변화무쌍한 오색의 단풍이 낙엽되어 앙상한 가지만을 남겨놓으면 나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확연히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리의 노숙인들, 지하철에서 더욱 자주 눈에 띄는 장애인들, 우리 주변의 보잘것없고 소외된 이들 등.(봉사)


   성모님의 아들과 따님들, 겨울은 우리를 초대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태어나신 계절이 왜 겨울일까요? 인생의 겨울은 하느님을 우리 곁으로 모시게 합니다. 겨울은 은총이 눈처럼 우리를 덮어주는 장입니다. 우리 다 함께 손에 손잡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 기쁨과 희망을 향해 달음질칩시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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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부식 사도 요한 신부 / 서울대교구 사회복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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