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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복음묵상] 양(量)과 질(質)의 차이 / 박상대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23 조회수744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6년 8월 23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리마의 성녀 로사 동정 기념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오?

내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단 말이오? (마태오 20,15)

 

  Am I not free to do as I wish with my own money?
Are you envious because I am generous?'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과 그 품삯의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착한 포도밭 주인은 한 시간만 일한 일꾼에게도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하루 품삯을 지불합니다

 

☆☆☆

 

 포도밭 일꾼에게 품삯을 지불하는 포도밭 주인의 처사는 오늘날 경영인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 시대라면 퇴출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매우 친절하고 자상한 주인임에 틀림없습니다. 한 시간만 일한 노동자에게도 그 가족이 먹고사는 데 필요한 하루 품삯을 지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 8시간을 일한 그 노동자에게 포도밭 주인이 불의를 저지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약속한 대로 하루 품삯을 지불하였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넘치는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상대적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불행과 아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서 불행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쁨과 행복에 우리도 함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포도밭 주인은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量)과 질(質)의 차이

  오늘 복음은 마태오가 단독으로 전해주는 ‘포도원 일꾼의 비유’이다. 서두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비유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상경하시는 길에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하늘나라에 관한 것이다. 오늘 복음의 포도원 일꾼의 비유가 지난 월, 화요일의 복음이었던 ‘부자청년의 추종거부 이야기’(19,16-22)와 ‘부자의 구원불가능에 대한 단언’(19,23-26)과 ‘예수추종의 보상에 관한 대담’(19,27-30)에 이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것은 마태오가 앞서간 예수님의 가르침을 요약하는 뜻으로 오늘의 비유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 것이다.”(19,30)는 역설적인 말을 오늘 마태오가 단독으로 전하는 비유의 끝(20,16)에 되풀이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종말에 이르러 하느님나라가 완성되면 삶의 모든 부분에서 약간의 서열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면적인 변화, 즉 처음과 끝이 뒤바뀌는 그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은 초기 교회 안에 상당히 짙게 깔려있던 생각이었다. 이는 마치 유행어와도 같은 것이었다.(마르 9,35; 10,31; 마태 19,30; 20,16; 루가 13,30) 그러나 이러한 처음과 끝의 뒤바뀜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생각이다. 예수께서 친히 이 말씀을 발설(發說)하셨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생각은 사람들의 것과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비교적 사회의 피지배계층과 소외계층이 예수를 추종하였기에 그 추종의 대가로 이런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 생각의 참뜻은 오늘 비유에 담겨있다.


  오늘 비유는 하늘나라에 관한 은유법(隱喩法)이기는 하지만 비유 자체로도 그 뜻이 충분히 전달된다. 포도원은 하늘나라요, 장터로 일꾼을 찾아나가시는 분은 포도원의 주인인 하느님이시다. 포도원에서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약속 받고 일하는 일꾼들은 하느님의 백성들이다. 마태오가 포도원 주인이 장터에 나가 일꾼들을 불러 일을 시키는 시간을 아침 6시, 9시, 12시, 오후 3시, 오후 5시로 구분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마태오가 제시하는 하느님 백성에 대한 구분이다. 각 시간대(時間帶)의 순서는 곧 구약의 선택받은 백성들, 즉 백성의 원로들과 지도자들, 대사제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 일반 서민들, 그리고 신약의 새로운 백성들, 즉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 소외 받은 사람들, 죄인으로 취급받던 세리와 창녀들의 순서로 볼 수 있다. 이같이 순서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하느님나라에 초대받았다는 것이다.


  비유 속에서 보듯이 포도원 주인의 후한 처사에 대하여 처음부터 일하던 일꾼들의 불평은 당연하다. 그것은 인간의 머리로 계산하기 때문이다. 품삯이 한 데나리온으로 약속된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중에 온 일꾼이 일찍 온 자기와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배 아프다 못해 신경질 나는 일이다. 사람의 계산법은 그렇다. 적게 일하고도 많이 일한 사람과 같은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적게 일한 사람 측에서 볼 때는 재수나 횡재 같이 보이고, 많이 일한 사람 측에서 볼 때는 억울하고 불공평하며, 때로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산법은 다르다. 하느님의 계산법이 다르다고 해서 인간의 상식(常識) 완전히 벗어난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오산이다. 따라서 지나치게 비유자체의 내용에 머물지 말고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예수님의 의중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 비유는 두 가지 교훈을 담고 있다. 첫째는 하느님 나라에 세상의 모든 사람이 초대를 받았으며, 초대받은 사람은 모두가 같은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꼴찌로 초대받은 세리와 창녀들에 대한 하느님의 후한 처사에 먼저 초대받은 사람들의 심기(心氣)가 불편한 것은 당연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계산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대접이라고 해서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그곳에 두 번째 교훈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엔 같은 대접이지만 그 내용은 다르다. 품삯의 양(量)은 같지만 그 질(質)은 다르다. 아침부터 일한 사람의 한 데나리온 속에는 하루 종일 흘린 땀과 정성이 베어있다는 것이다. 늦게 왔는데도 같이 주어진 품삯의 가치는 처음 것과 다르다는 말이다. 많은 수고 없이 주어진 품삯은 같은 액수라 할지라도 그만큼 가치가 떨어진다. 이는 양만 많으면 좋아하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큰 경종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같은 양이라 할지라도 받는 사람에 따라 그 내적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박상대신부-

http://my.catholic.or.kr/vegab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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