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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에잇, 불공평한... 조영만 신부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23 조회수1,007 추천수12 반대(0) 신고

 

 

<에잇, 불공평한!>

정말 불공평한 세상입니다. 누구는 부모 잘 만나 수천억 재산, 세금 안내려고 앙탈을 부리고 또 누구는 부모가 모른채 버려져 팔도 없이 살아가는 꼬맹이도 있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했지만, 세상 살다 험한 일 겪다보면 사람 위에는 사람 없을지 몰라도 돈 위에는 사람 있고, 사람 밑에는 사람 없을지 몰라도 돈 밑에는 사람 있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성실하게 일하고 꼬박꼬박 하루를 열심히 산다는 일이 괜히 손해나는 짓 같기도 하고, 나만 착하게 산다는 일이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이 땅에서 부를 누리고 산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친구네가 아파트를 분양받았다고 해서 축복식을 갔었습니다. 화명동 동원로얄듀크... 이름도 근사하고 평수도 제법이길래, “임마, 니 출세했다. 축하한다. 자슥아” 등을 두들겼더니, 그 녀석 왈, “친구야. 모르는 소리마라. 이 집 아직 내 집 아니다. 절반이 빚이다” 합니다.

아이 둘, 어머니에게 맡겨놓고 부부가 맞벌이해서 앞으로 몇 년은 더 부어야 겨우 빚잔치가 끝난다는 속내를 듣고서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 한 채에 달린 인생... 그렇고 그런 부모 만나 별 도움 없이 결혼해서 집 한 채 장만하려면 십년이 걸립니다. 그리고 그 다음 십년은 뭘 하느냐? 그동안 집 산다고 미루어놓았던 가전제품들, 그 집에 맞는 가구들 바꾸고 들여놓는데 십년이 걸립니다.

그러면 그 다음 십년은 뭘 하느냐? 이제는 자식들이 커서 이 놈 저 놈 돈 뜯어가고 시집장가 보낸다고 집에 있는 것 다 팔아먹는데 또 십년이 걸려, 이제 정신차려보면 마누라는 할머니가 되어있고 자기는 천상없이 요 집 한 채에 콕 쳐 박혀 있어야 하는 인생... 참... 우리 산다는 일이 이렇게 집 한 채에 엉겨 있어야 될 일이 아닌데,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불공평하다하다 해사도 인간 인생만큼 이렇게 불공평할 수 있을까? 아프고 싶지 않은데도 아파야 하고 큰 병도 꼭 없는 집 사람에게 먼저 닥치고, 뭐 쫌 해볼라고 애를 쓰면 쓸수록 없는 돈에 뭐가 받쳐줘야 일어서든지 하지, 실패하는 사람은 자꾸만 그 실패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열심히 산다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었는데, 우리 인간의 눈에 그렇게도 불공평하게 보이던 인생길이 정말로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평일 강론이라 짧아야 하는데, 우째 한 번 좀 길게 해도 되겠습니까? 소록도에서의 일입니다. 소록도의 나환우들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험한 세상 살면서 억울하네 어쩌네 해사도 사실 이 사람들만큼 억울한 인생이 있을까... 자기 잘못하나도 없이 천형을 앓아, 가족에게 버림 당하고 양잿물 마셔도 이 질긴 목숨 끊어지질 않는다고 하루는 손가락이 없어지고 하루는 눈 알이 없어지고, 그야말로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는 목숨줄 부여잡고 있는 그 사람들만큼 억울한 인생이 없습니다.

그곳에 의사 하나가 봉사를 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그래도 이 땅에서 의사하면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인데, 어렵고 힘든 사람들 위해 봉사하겠다니 그나마 기특한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어느날, 소록도 나환자 할아버지가 속이 자꾸만 안좋다고 진료를 부탁했었는데, 너무 바빠서 깜빡하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몇일이 지나 그 할아버지 생각이나 영감님 진료 받으러 오시라 하니 그 할아버지 벌써 고흥에 나가 진료를 받고 오셨답니다. 그래 검사 결과가 뭐래요...? 하니까 할아버지 위암으로 한 삼 개월 남았다네... 하시더랍니다.

나병인것도 서러운데 말년에 위암까지 앓아야 하니 얼마나 기가 막힐 일, 이 의사도 마치 자기가 그 병 들게 한 것처럼 죄송해서 그날부터 매일 그 할아버지 독신사에 왕진을 나갔답니다. 어렵고 서럽게 살아온 인생, 가는 길도 서럽게 가실 줄 알았는데 그 할아버지, 참으로 임종 준비를 잘 하시더랍니다. 당신 상 나면 화장터까지 따라와줄 이웃 노인네들 나누어줄 라면하고 수건하고 미리 다 만들어 놓으시고 이것 저것 정리 깔끔하게 해놓으시고 드디어 그 할아버지 임종을 맞으셨습니다.

할아버지 부음을 듣고 의사가 달려갔습니다. 이래저래 시신을 수습하는데, 사람이 그렇습니다. 날 때는 뭐쫌 해보겠다고 두 주먹 불끈 쥐고 나지만, 갈 때는 누구나 이 두 손 쫙 펴고 가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 손가락도 제대로 없는 손을 꽉 쥐고 죽으셨답니다. 가슴에 여한이 많아 그러셨나... 싶어 손가락을 펴 보니 거기에서 종이 조각하나가 툭 떨어지는데, 그것을 펼쳐 읽던 의사는 그 자리에서 멍하고 말았습니다.

그 종이에 무엇이 써져 있었느냐? 다름 아닌 당신에게 기도를 부탁하던 수십명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져 있더랍니다. 그리고서는 “하느님, 이날 이 때까지 저를 살게 해준 참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 때 그 의사 표현이 그렇습니다. 쇠망치로 머리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더라고... 자기는 소위 이 땅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의사인데, 좋은 가정과 좋은 교육을 받은 엘리트인데, 그런 자기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미워하는 사람들 지천이요, 내 맘에 안 드는 불평불만이 떠날 날이 없는데, 이 문둥이, 나병도 서러워 암으로 죽은 이 문둥이 가슴에는 어찌 죽는 이 날까지 고마운 사람, 감사한 이름들로만 가득차 있을 수 있는가... 참으로 하느님은 공평하신 분이다... 의사 말이 그렇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정말로 불공평한 세상입니다. 결과만 놓고 따지다면 우리에게 평등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눈, 과정의 눈, 그 영혼의 눈으로 놓고 따진다면 참으로 공평한 것이 인생입니다.

오늘 하느님의 포도밭에 일하러 온 사람들을 보십시오. 인간의 눈으로는 대단히 불공평한 처사이지만 하느님의 계산법은 다르십니다. 한 데나리온은 그 당시 한 가족이 하루를 먹을 수 있는 분량이었습니다. 이 분량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아침부터 일한 사람에게도 필요한 것은 한데나리온이요, 해질 무렵에 당도한 사람에게도 필요한 것은 한데나리온입니다.

하느님은 그것을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아침부터 일한 사람의 억울함...이 언제나 이 세상을 복잡하게 만들고 불평등을 자꾸만 가져옵니다. 왜 나만 이러나...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나... 내가 당하는 설움이 제일 큰 것 같고 내가 겪는 고통이 제일 아픈 것 같지만, 실은 그 모든 것 이미 저 십자가 속에 고스란히 박혀있는 억울함이요, 설움입니다.

우리는 점차 이 억울하고 이 불공평함 통해 십자가를 이해하는 방식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억울하지 않은 자, 결코 저 십자가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설움 없이 자라온 인생은 저 십자가가 왜 저러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실 아프고 고통스럽더라도, 억울하고 서럽더라도 저 십자가를 사랑하고 저 십자가를 닮아가는 인생만큼 복된 인생은 없습니다. 저 십자가 끝에 구원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공평을 이해한 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가난하다고 다 불행해야 하는 것 아니고, 아프다고 다 불행해야 하는 것 아닙니다. 고통당한다고 그 고통이 나의 행복을 좌지우지하게 만들면 안 된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쩌면 하느님 앞에서 한 뼘 더 커질 때는 바로 억울하게 한 대 맞았을 때, 분한 배신 묵묵히 삼켰을 때, 그러고서도 그 사람 다시 한 번 끌어안았을 때, 아니었습니까?

하느님의 계산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아직 하느님의 구원도 한참 남았습니다. 아멘.

 

 

출처;야후블로그<이브의 행복으로 가는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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