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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 > 목욕탕에서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23 조회수1,056 추천수12 반대(0) 신고

 

 

                          목욕탕에서


   때많은 인생


   나는 매일 아침 등산을 하며 등산 후에는 또 일반 대중탕에서 목욕을 한다. 도시에서 살 때는 그렇게 할 기회가 자주 없었는데 함평 시골에 와서는 산이 가깝고 또한 목욕비가 싸디보니 두가지 일이 아예 일과처럼 굳어지게 되었다.


   처음 목욕탕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혼자서 때를 밀고 있던 어떤 형제가 나를 흘긋 보더니만 기겁을 해서 놀라는데 아마 성당에 다니는 신자임이 분명한 듯했다.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아는척을 해도 그는 나를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채 부끄럼을 타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목욕탕에서 신부님을 만나 보기는 제 생전 처음입니다!” 그는 마치 신부님의 알몸을 쳐다봤다가는 무슨 죄라도 짓게 되는 줄 알고 도무지 안절부절 못했다. 나도 한마디 했다. “우린 이제 깨복쟁이 친굽니다.” 그래도 그는 거북하다는 듯이 대충 샤워를 하고 나가려는 것을 뒤에서 불렀다.


   “등 좀 밀어 주시겠습니까?” 그 말에는 아주 반색을 하더니 때를 미는 정성과 손길이 아주 극진하였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더 했다. “신부님도 때가 있군요.” 그 사람이 비로소 웃었다. 그래서 나도 한마디 더 했다.


   “나는 겉때보다는 속때가 더 많은 사람입니다.



   사람도 아닌 인생


   요즘은 시골에도 몸집이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한증탕마다 만원을 이루게 된다. 어느 땐 초등학생들까지 들어와서 땀을 내고 살을 빼겠다고 버티고 앉아 있는 것을 보노라면 세상 참 많이 좋아졌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지난 봄에 혼자서 긴 단식을 할 때의 일이었다. 그때 서울의 모 성당에 강론을 하러 갔다가 점심시간에 잠시 목욕탕에 들렀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리는 바람에 아주 곤혹스러운 일이 있었다. 평소에는 몸무게가 55kg에서 항상 왔다갔다 했는데 그 때는 처음으로 47kg까지 내려가서 뼈만 앙상하게 드러난 꼴이 실로 가관이 었었다.


   막 샤워를 끝내고 냉탕으로 들어가려 할 때 한증탕에서 나오던 어떤 중년의 남자와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그는 대단히 뚱뚱한 친구였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갑자기 내 몸을 구석구석 뜯어보더니만 드디어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몸이 참 좋습니다!” 그는 분명히 거꾸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어떤 농담이나 빈정거림은 아닌 듯 했다. 나는 대답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가 한마디 덧붙였다. “불필요한 살은 조금도 없으시고 아주 꼭 필요한 근육만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데 내 몸이 갑자기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꼴이었다. “고맙습니다.” 나도 모르게 이상한 대답을 해 놓고 혼자서 너털웃음을 짓자 그는 신기한 듯이 내 몸을 오래오래 쳐다보곤 하였다.


   그날, 또 유난스러운 것이 있었다. 그때 탕 안에 모두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이 있었는데 웬일인지 나 하나만 빼고는 모두가 똑같은 배불뚝이 뚱뚱이들이었다. 서울은 뭐가 달라도 분명히 달랐다! 언젠가 탈의실에서 몸무게를 달던 중학생들의 대화가 생각난다. “60kg도 못 되는 네가 인간이냐?” 그 말을 들으니 나같은 사람은 생전 ‘인간노릇’ 해 보기는 다 틀렸다는 생각도 갖는다.



   더러운 인생


   한번은 목욕탕에 들어서서 어떤 여자 꼬마아이가 자기 아빠랑 몸을 씻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들어가자마자 그 꼬마의 시선과 표정이 내 신경을 사뭇 건드렸다. 처음부터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그 꼬마는 내가 옆으로 가면 옆으로 쳐다보고 뒤로 가면 뒤로 돌아서 쳐다보는데 내 몸에 뭔 이상이 있는 듯이 여겨졌다. 그러나 내 몸의 아래 위를 살펴봐도 별 하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냥 탕 속에 들어가 눈을 감아 버렸는데 그래도 혹시나 싶어 고개를 돌려 그 꼬마를 보니 꼬마는 여전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별일이었다. 그때 비로소 긴장이 되는데 도무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번 더 뒤돌아보고 그 꼬마에게 살짝 윙크를 했더니 고것이 글쎄 “에이, 더러워!” 하더니만 침 뱉는 시늉으로 내게 인상을 팍 썼고 그것도 모자라서 주먹을 들어 때리는 시늉을 하더니 “칵 죽여 버릴라!” 하면서 위협까지 하는 것이었다. 날 죽인다는 소리는 군대에서 기합받을때 처음 듣고는 그때가 두 번째였는데 까딱 잘못했으면 그 날 목욕탕에서 송장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어린이의 눈은 하느님의 눈이요 아기의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인데 저 고마가 혹시 내 안에 감춰진 어떤 추악한 모습을 보고 질책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두렵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다.


   “예수님, 별놈이 다 후려치는군요.”



   추저분한 인생


   작년 여름 휴가 때의 일이다. 은퇴하신 노인 신부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니면서 즐겁게 지내다가 이틀째 저녁에는 온천에 들러 목욕을 하게 되었는데 막상 탕 안에 들어가고 보니 갈아 입을 내복이 없었다. 전날에 세탁 못 한 것을 깜박 잊고 있었으며 이미 입고 있는 옷도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기 때문에 탕 안에서 내복을 몰래 빨아 한증실에서 말리는데 누군가 뭐라고 한마디 할까 봐 마음이 아주 조마조마하였다.


   여름인데도 온천에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그 더운 날씨에도 한증실은 사람들이 버글버글 끓었다. 그래도 한쪽에서 숨기며 내복을 말리던 나는 땀이 차면 얼른 냉탕에 다녀와서는 빨래 곁에서 망을 보고 보초를 서곤 했는데 그만 어느 순간에 그 난처한 일이 들통나고 말았다.


   냉탕에서 한참 몸을 담그고 있을 때 누가 뭐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는데 처음엔 그것이 뭔 말인지를 몰랐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그 족을 봤을 때, 때밀이 청년이 뭔 옷을 들고 “누구 것이냐?” 라고 외칠 때도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별 추접한 사람 다 있네!” 하고 혀를 찰 때는 갑자기 정신이 퍼뜩 들면서 “내 옷이다!” 하는 감이 잡히게 되었다. 얼른 일어나서 한증실에 달려갔더니 과연 내 내복이 거기에 없었다. 큰일이었다. 때 미는 사람 말 그대로 참으로 추저분한 일이었다.


   탈의실로 옷을 찾으러 가니 새파랗게 젊은 그가 담배를 성난 듯이 빨아 대면서 내 내복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데 말문이 콱 막혔다. 할 수 없이 사정사정했더니 그가 이번엔 도리어 “미안하다”라고 하면서 자기가 선풍기 바람으로 말려 놓겠으니 목욕이나 끝내고 오라 하기에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추저분하다”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것은 아니지만 탕 속에 다시 들어가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http://my.catholic.or.kr/vegabond


 

   “너희도 각시 없이 살다보면 추저분할 때가 있을 것이다!”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소록도에서온 편지)중에서/강길웅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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