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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은 범고래도 춤추게 한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24 조회수729 추천수4 반대(0) 신고
 

예수님 당시에도 지역에 대한 편견이 무척 심했나 봅니다. 나타나엘은 친구인 필립보가 “모세와 예언자들이 기록한 그분” 을 만났다고 말하며 그 예수님이 나자렛 출신이라고 말하자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고 무시하는 듯 한 대답을 합니다. 자신도 갈릴래아 땅에 살면서도  나자렛은 촌구석이고 율법이나 예언서 어디에도 기록된 바 없으니 필립보의 말을 믿으려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복음서를 보면 ‘이방인들의 갈릴래아' 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갈리래아 지역은 유대인들에게 멸시 받는 지역이었습니다. 혼혈인들도 많이 살았고 대외 무역으로 이방인들과 교류도 많았습니다. 이에 당황한 필립보는 백문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만나서 판단하라고 권합니다. 기껏 생각해서 알려주었더니 딴소리만하고 아는 체만 한다고 투덜댔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 다가오는 나타나엘을 보신 예수님은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 다 아시면서도 그를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칭찬하십니다. 여느 사람 같았으면 잘하는 것에는 침묵하고 있다가도 거슬리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지체 없이 지적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달랐습니다. 잘못한 점은 못 본 체 하고 재빨리 화제를 다른 것으로 옮기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처음 뵙는 사람에게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듣습니다. 나타나엘은 이방인이라는 소리듣기를 가장 싫어했습니다. 자신이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유대지방 사람들은 종종 자기를 이방인 취급했던 것에 부하가 났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거기다가 거짓(dolos)이 없다고 칭찬하시니 속으로 으쓱했습니다. 약간은 겸연쩍 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저를 알고 계십니까?” 그는 의문이 생겨 묻습니다.

  예수님은 이에 나타나엘만 알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십니다.

  “필립보가 부르기 전에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


  나타나엘은 깜짝 놀랍니다. 그분께 신뢰가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상대방이 신뢰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만드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신뢰심이 생긴 다음에라야 또 다른 행동이 저절로 일어나는 법입니다. 서로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여기게 됩니다. 나타나엘은 절친한 친구인 필립보가 새삼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필립보가 미리 말해 주었던 “그분” 이라는 말에다가 자신의 뜻까지 더해서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이십니다.”


  이에 예수님은 두 사람들에게 당신과 함께 지내면 더 긍정적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서를 잘 알고 있는 그들에게 잘 인용되지 않는 구절로 자신의 정체를 열어 보이십니다. 그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만드십니다. 그들이 익히 아는 신명기 18,18 의 ‘그 예언자’ 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세기 28,12 을 들어 설명하십니다. 야곱의 사다리는 하느님의 현존 장소를 뜻합니다. 그러니 “사람의 아들” 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지상에 현존한다는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회만 되면 새로운 가르침을 주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예수님께서 인간의 심리를 얼마나 잘 꿰뚫고 보시는지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여러 번 예수님을 인간에 대해 모두 아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몇 년 전에 베스트셀러였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는 책의 내용이 생각납니다. 그 책에서 한낱 야수로만 치부했던 범고래가 조련사와 어울려 묘기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 저자는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뒤통수치기 반응’을 가지고서 상대방에게 칭찬보다는 잘못 했을 때 갑자기 화를 내고 닦달한다고 말합니다. 이와는 달리 방향을 전환(redirection)해서 칭찬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답니다. 야생의 범고래마저도 인간과 신뢰가 생기면 칭찬 받는 것이 즐겁고 신이나기 때문에 더 긍정적으로 묘기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중요하고 귀하게 대접받을 때 미처 깨닫지 못하던 에너지가 생겨나 힘든 일도 잘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전승에 의하면 나타나엘(바르톨로메오)은 예수님의 사랑을 듬뿍받고 멀리 인도까지 복음을 선포하였으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는 형에다가 살갗이 벗기우고 또 참수까지 당하는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웃을 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새로운 에너지를 생겨나게 합니다. 그 에너지는 생명을 만들어 주는 원천입니다. 그 사랑을 계속 공급받게 되면 우리는 “영원히 산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젠 “사랑은 범고래도 춤추게 한다.” 라고 말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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