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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섬강 강가에서. 류해욱 신부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25 조회수627 추천수2 반대(0) 신고


 

 

섬강 강가에서


  새벽잠을 깨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3시 30분. 일어나서 밖에 나왔습니다.

피정 중에 영적독서로 [제네시 일기]를 다시 읽었지요. 뉴욕 주에 있는 트라피스트 수도원 제네시에서는 하루 일과가 2시 기상으로 시작된답니다. 새벽 2시에 일어나서 기도하는 분들이 있어서 금방 망할 것 같은 세상이 이나마 굴러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2시는 아니라도 3시 30분에 일어나서 걷는 명상을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제네시 일기]와 더불어 틱낫한 스님이 마음을 모아 천천히 걷는 선 수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흉내를 내보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새벽공기가 차지도 덥지도 않은 아주 알맞은 온도이고 아직 어두운 밤이었지만 걷기에는 무리가 없고 놀랍도록 정신은 맑고 기분은 상쾌했습니다. 섬강을 따라 천천히 왔다 갔다 하면서 걸었지요. 강물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멀리 가로등 불빛에 비친 노란 물결이 강물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지요. 풀벌레소리는 합창을 넘어 요란한 지경이었지요. 이 새벽 깨어 아우성처럼 노래 부르는 사연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어쩌면 그것이 풀벌레의 존재 이유, 풀벌레로서의 삶의 소명인지도 모르지요.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소명이듯이 풀벌레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풀벌레로서의 사랑이고 소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물소리를 듣고 싶기도 하고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읍내 가까운 섬강유원지까지 천천히 걸었습니다. 다리 위의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붉게 푸르게 노랗게 긴 색조가 물 위에서 춤추고 있었습니다. 섬강 유원지에 다다르니 얕은 댐으로 강물을 막아 놓았더군요. 앝은 댐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소리가 아주 크게 들려왔습니다. 댐 위의 강물은 마치 호수처럼 맑고 고요했습니다.

 

  한 시간 이상 걸었더니 우선 다리가 아팠지요. 바위를 찾아 앉았습니다. 호수처럼 고요한 물 위에 산 그림자가 비치고 있었습니다. 바위에 앉은 제 그림자도 제 실제 모습보다 훨씬 크게 비치고 있었지요. 제 첫 사진묵상집, [자연]에 썼던 ‘잔잔한 수면’이라는 글이 생각나며 내가 과연 잔잔한 수면이었는지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잔잔한 수면


사제는 결코 빛이 아니라네.

다만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사람들에게 비추어주는 수면이어라


거친 파도가 이는 수면은

있는 그대로의 빛을 반사할 수 없으리


고요 속에 머무는 빛


  가로등 불빛의 반사가 아름다웠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비추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가득 밀려왔습니다. 고요하게 보이는 물도 가만히 바라보보니 천천히 흐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바위와 흐르는 물, 산 그림자 등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하느님, 자연, 사람들, 그리고 저를 생각했습니다. 저의 삶이 어떤 삶이고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했습니다.

 

  잠시 물에 비친 불빛을 따라 왔던 길을 생각했습니다. 멀리서 아름답게 비치던 불빛이 가까이 오니 아무 것도 비치지 않고 그냥 물이던 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틱낫한은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물과 물결로 비유하지요. 그 의미도 다시 헤아려 보았습니다. 물과 물결이 하나이듯 하느님과 나와 하나임을 깊이 느꼈습니다. 모든 것이 어우러져서 하나가 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노먼 매클린이 자신의 유년시절을 비망록 형식으로 그린 소설을 로버트 레드포드이 영화로 만든 ‘흐르는 강물처럼’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선율적인 연출력이 압권인 이 영화는 제가 좋아하는 대사들이 몇 개 있지요. 마지막 대사도 인상적이었지요.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흘러 하나가 된다.”라는 의미이지요. 결국 우리 삶이 흘러 하나인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칼릴 지브란의 표현을 빌면, 아름다움과 사랑의 바다인 하느님께로.

 

  다시 천천히 걸어 돌아오는 사이 날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먼저 물새 나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닭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김형영 시인의 ‘나를 깨어다오 닭아’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다음에 나누기로 하고 김형영 시인의 시를 나누며 마칩니다.

 


나를 깨워다오 닭아

                   김형영


겨울이 깊어

어둠이 깊어

한 눈도 반만 뜬 채

울안에 웅크리고 있는

닭아,

네 그 닭털 침낭 속의

포근한 잠일랑 걷어버리고

홰를 치며 울어라

주님을 모른다고

머리를 흔들던

시몬 베드로를 깨운

닭아,


이젠 네 그 약속의 울음으로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배반의 잠에 취한 우리들을

태양을 깨우듯이

깨워다오

눈으로는 바로 보고

귀로는 바로 듣고

입으로는 바로 말하게

닭아,

사는 동안 우리도

주님이 오신다고

잠든 세상을 깨우는

한 닭울음소리가 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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