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낮은 곳을 사신 두 분의 사제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26 조회수883 추천수7 반대(0) 신고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오늘 복음 말씀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두 분의 사제가 있습니다. 현재 부산교구 주교님이신 황철수 바오로 주교님과 춘천교구 사제이신 ‘ㅂ‘ 신부님입니다. 많은 교우님들이 평화신문을 통해서 읽으셨겠지만 두 분은 안식년을 아주 특별하게? 보내신 분들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하루나 몇 칠 정도가 아니라 한 달을 정식으로 취직하여 평신도들의 고난한 삶을 체험하셨습니다.


  황 주교님은 주교좌에 오르시기 전에 안식년 한 달 동안 부산 시내 택시 운전기사로 근무하셨습니다.

당시 체험기를 읽다보면 운전기사가 지리도 몰라 쩔쩔매던 어려움을 극복한 내용이 나옵니다. 알량한 자존심을 숙이며 솔직하게 “죄송합니다. 길을 확실히 몰라서요....” 하고 고백하니 모두들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었다고 표현하십니다.

  어느 날 하루를 정리하면서 문득 승객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는 오늘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나 그들의 삶과 인생까지는 만나지 못했다. 돈을 벌려고 작정하니까 사람들이 돈으로 보인 것 같다.”

“세상과 사람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보지 않으면 어느 누구에서도 삶의 향기를 맡을 수 없는 이치가 여기 있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대개 친절하고 때 묻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지식이 높아서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지만 행복하고 선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택시운전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1 초라도 뒤지면 손해라는 냉엄한 현실이었다. 그러니 내 위주로 생각하게 되고 차선을 잡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길만 아니라 남의 길도 쳐다 볼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면 세상 어떤 독으로부터도 해를 입지 않는다(마르16,18). 그런데 우리는 믿음이 약하니까 세상 독에 너무 쉽게 해를 입는다. 그 독 때문에 평화를 잃고 고독해진다. 그리고는 서로 사랑하기 힘들어한다.”


길 가던 수녀님을 보고 차에 태우시면서 느낀 감상을 이렇게 씁니다.

 “세상 사람들은 온갖 탈 것을 이용해 정신없이 달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멈춰서면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딘지, 또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게 현대인들의 삶이다. 묵묵히 걸어 다리를 건너는 수녀님의 모습이 현대인들의 삶과 대조적이라 인상적이었다.”


  주교님께서 실제 각박한 삶의 현장 속에서 평신도들이 겪는 어려움도 보셨고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여러 사람들도 만나셨습니다. 바로 자신의 위치에서 내려와 낮은 곳의 모습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작년 12월 25일 자 평화신문 박스기사에 난 춘천교구 ‘ㅂ’ 신부님의 기사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본명과 성함은 극구 사양하시어 알 길이 없었으나 기사 내용으로 볼 때 평소 아주 겸손한 사제였을 것입니다.

 “사람들 사는 게 점점 힘들어 보여서 나왔어요. 난 소신학교 출신이라 세상물정에 어두워요. 교우들이 어떻게 벌어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집 장만하며, 교무금도 내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환경미화원 생활 첫날부터 높은 벽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쓸고 닦아도 곧 더러워지는 화장실은 물론이고 엄연히 쓰레기통이 마련되어 있는데도 함부로 여기저기 버리는 데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일이 고달픈 것은 견딜 만 했습니다. 사람들의 멸시는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난 27년 동안 사제복 덕분에 분에 넘치는 인사와 대접을 받고 살았습니다.”

똑같은 사람인데 복장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들의 대접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하십니다.

 

 “그동안 강론 하면서 ‘사랑’을 입버릇처럼 얘기했는데 청소부로 일해 보니까, 휴지를 휴지통에 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이 참사랑인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평범한 일을 통해 누구에게 과시할 것도 없고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허리 펼 틈도 없이 일하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곯아떨어집니다. 본당에 돌아가면 그처럼 피곤하게 한 주를 보낸 교우들에게 평화와 휴식 같은 강론을 해주고 싶습니다.”

 “힘들여 일해서 번 돈에서 교우들은 헌금이며 건축기금까지 내니 그 고마움을 알겠습니다.”

 “사실 저의 이 ‘낮은 자리’ 체험은 사치입니다. 나는 오늘이라도 그만 두면 안도의 한숨을 쉬겠죠. 그러나 이곳이 생계터전인 진짜 환경미화원이라면 절망의 한숨을 쉬지 않겠습니까?”


  신부님께서 겪으신 청소원 체험이 단 한 달뿐이니 제대로 모른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소위 제일 천하게 대접받는 그 일을 하시려고 했다는데 더 의미가 있습니다. 섬기려는 자세를 늘 지니셨기에 나올 법한 행동입니다.


  이밖에도 ‘인보성체 수도회’ 소속 수녀님들은 매년 여러 명씩 돌아가며 한 달간 직장체험을 갖는다고 합니다. 신분을 철저하게 숨기면서 주로 궂은 일자리에 나선답니다. 실생활의 어려움을 통해서도 주님께 다가가는 평신도들을 이해하고 함께하려는 마음에서랍니다.


  저는 오늘 복음 말씀을 겸손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제와 수도자들을 통해서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그런 분들이 언제나 계셨는데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고.....


  우리는 자주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오히려 무시하고 얕잡아 봅니다. 그런 태도는 율법학자나 바리사이 사람들이 왜 성구갑을 크게 만들어 지니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이는지 알게 합니다. 그들이 왜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하는지 알게 합니다. 바로 우리의 태도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있어 보이고 폼재는 인간을 더 우러러 보는 풍조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겸손한 사람들을 더 높이고 우대한다면 모두들 더 겸손해지도록 노력하지 않을까요? 인간 사회에는 스승자리에 있는 분들이 언제나 필요합니다. 요사이 교직에 계신 분들을 업신여기는 풍조가 피어납니다. 소수의 빗나간 스승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을 더 존중하고 우대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해결방법일 것입니다.


  다행이 우리는 한 분뿐인 스승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분 이외에는 모두 형제자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서로를 예수님처럼 받들어 모셔야 실제 형제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라야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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