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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 신부 시늉, 신부 노릇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28 조회수749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재웅 신부님의 글

 

얼마 전 아는 신부가 결국 신부생활을 그만 두었다.

오죽했으면 그 어려운 결정을 내렸을까 생각하면 참 속이 상했다.

어른 신부님들이, 죽을 때까지 신부로 산 것만으로도 존경받을 만하다고 하셨는데 이제야 그 말이 이해된다. 섣부른 의욕이 앞서 있었을 땐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

 

이제는 스스로 내 삶이 '신부 시늉' 이었음을 알고 있다.

사실 누구든 신부 노릇은 할 수 있다.

순서와 동작만 알면 미사드리는 것도 어려울 것이 없다.

 

내 신부인생에 있어 가장 씩씩한 때는 2년차 보좌신부 때였다.

아이들부터 젊은이까지 담당하니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머리 짜낼 일도, 골치 썩을 일도 없었다.

그냥 녀석들과 신나게 놀기만 하면 되었다.

밥 사주고 술 사주다 보면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이 남아나질 않았다.

오죽하면 단골 술집 주인이 세례를 받았을까.

당시 청년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신부님, 저희는요~. 우리랑 재밌게 놀고 좋아해주고 사랑해 주는 신부님이면 돼요."

 

그런데 주임신부가 되니 완전히 달라졌다.

보좌 때는 만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이름도 다 외우고, 어떤 고민을 품고 사는지, 누구랑 사귀는지도 다 꿰고 있었다.

녀석들의 고민이라고 해봐야 내가 답을 훤히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주임신부가 되면 신자들과 일일이 정을 붙이고 사랑을 키워가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고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사목의 결실은 사목자의 영적 성숙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제서야 사제는 하느님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씀씀이와 행동거지를 통해 하느님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예수님을 닮은 사랑으로 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제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포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참으로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어른 신부님이 이런 가르침을 주셨다.

"신부는 미사만 정성껏 드리면 돼. 다른 거 잘 못해도 괜찮아."

 

강론준비나 본당 운영에는 소홀하더라도 미사만 잘 드리라니....  .

 

그러나 그 신부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이제야 느끼고 있다.

 

한 신부님은 50년 전 할아버지 교황님이 드리는 미사를 잊지 못하고 사제 생활의 표본으로 삼고 계셨다.

 

 

<저는 50년 전에 교황 네오13세의 미사에 참례하였습니다. 그 미사는 제가 읽은 어떤 책이나 어떤 설교보다도 심오한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미사를 드릴 때마다 항상 그분이 미사에 보이셨던 정성을 본받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황성하는 당시 연세가 여든다섯이었습니다.

그분이 성당으로 들어오실 때에는 약하고 허리가 상당히 굽은 노인으로 보였지요.

그러나 제대에 오르시자 새로운 생명력과 활기가 그분을 감돌았습니다.

그분의 몸짓과 움직임, 느리지만 분명했던 목소리는 모두다 하느님의 실존을 명료하게 느끼고 계심을 드러내었습니다.

 

교황님은 최고의 경배를 드리며 성체를 두 손으로 받들고 '성변화경'을 경건히 낭독하셨습니다. 그때, 교황님의 얼굴은 아름다운 색을 띠며 빛났고 눈에서도 빛이 났으며 그분의 모든 표현에서 전능하신 주님과 교류하고 계심을 알게 하였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하고 계시는 성업의 엄청난 의미를 잘 깨닫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의 면류관을 앞에 두고 계신 것처럼 무릎을 꿇고 성체를 높이 들어올려 희열에 차서 응시하시고는 천천히 성체포 위에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분은 가장 소중한 성혈의 성변화를 앞에 두고 살아있는 신앙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을 기도할 때 그분은 주님을 바로 눈앞에 두고 기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분이 성체를 모시고 성혈을 마실 때에 마음에 간직하셨던 그 사랑을 감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실 그 미사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전체적인 예식은 간소한 것이었지만 제가 방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너무도 깊은 감명을 받아서 제가 지난 50년간 내내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나도 신자들에게 좋은 미사, 하느님의 은총이 전해지는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여러분도 평생 잊지 못할 미사를 만나기 위해서, 또는 드리기 위해서 잘 준비하고 노력하는 교우들이 되셔야 한다.

이 미사성제 안에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신 하느님을 확인하고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우리 교회 공동체를 꼭 만들어야겠다.

 

                         출처 : 가톨릭 다이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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