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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늘 푸른 한그루 소나무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28 조회수982 추천수13 반대(0) 신고
8월 29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마르코 6장 17-29절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늘 푸른 한그루 소나무>


인간관계 안에서 정말 힘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다름 아닌 가까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고언(苦言-듣기에는 거슬리나 도움이 되는 말), 직언(直言-자신이 생각하는 바에 대해 기탄없이 던지는 말), 충언(忠言-충직하고 바른 말)을 던지는 일입니다.


더구나 그 대상이 하늘같은 선배나 스승님, 존경하는 교수님이나 선생님, 사랑하는 부모님, 올려다보기도 두려운 직장상사라면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분들도 나약하기 그지없는 한 인간일 뿐입니다.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연약한 갈대입니다. 그분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잘못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심각한 오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윤리, 도덕적 기강이 해이해질 때도 있습니다. 삶 전체가 방향을 잃고 헤매다가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도 있습니다.


그런 순간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처신하겠습니까?


당연히 용기를 내겠지요. 당장 그분을 기분 나쁘게 해드리는 것, 그로 인해 그분 마음을 상하게 해드리는 것 큰마음으로 감수하겠지요. 그분의 큰 실수에 대해, 그분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적당히, 감 못 잡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명확히 꼬집어서 말할 것입니다.


이런 어려운 노력은 어찌 보면 그분을 위해서, 공동선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노력이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을 살리는 노력, 공동체 전체를 살리는 노력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세례자 요한이 그랬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헤로데의 그 알량한 권위 앞에 몸을 낮추었습니다. 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그의 심각한 문제 앞에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적당주의로 처신했습니다. 그의 심각한 도덕적 타락 앞에 나 몰라라 했습니다. 모두들 침묵했습니다.


단 한 사람, 세례자 요한만이 아름다운 저항정신의 깃발을 올렸습니다. 늘 그랬듯이 세례자 요한은 날카로웠습니다. 불의 앞에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단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정확하게 지적했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적당히, 물에 물 탄 듯이, 상대방 눈치를 살피면서가 아니라, 신랄하게 지적했습니다. 더욱 놀랄 일이 있습니다. 한번 말해서 먹혀들어가지 않으니 거듭 반복해서 헤로데의 타락을 지적했습니다.


결국 세례자 요한은 그 순결한 양심, 그 물러서지 않는 강직함, 그 아름다운 저항정신으로 인해 무고한 죽임을 당합니다.


남들이 설설 기던 부패한 절대권력 앞에서도 단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당당하게 직면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빛을 발합니다. 오늘따라 더욱 존경스러워 보입니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상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공동선을 준수하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았던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바라보며 산정에 홀로 서있는 한 그루 늘 푸른 소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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