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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간을 넘어서는 신앙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30 조회수846 추천수6 반대(0) 신고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마태 23, 27.30.)


  예수님 시대에는  동굴로 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앞에 그곳이 무덤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외부에 회칠을 해야 했다. 부정한 것과 접촉하면 안 된다는 율법 규정을 지키려고 그렇게 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관심은 온통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는데 있었다. 특히 눈으로 쉽게 들어나는 것에 온 신경을 썼다. 하느님의 눈보다 남의 이목을 더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헬레니즘시대 이전 구약 시대에는 예언자들이 많이 활동했었다. 그 예언자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 진다. 한 부류는 왕에게 듣기 좋은 말만 예언하는 다수의 왕궁 예언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귀와 영달을 위해서 하느님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았다. 참된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없어 그저 점쟁이처럼 눈치로 살아갈 뿐이었다. 처음부터 왕의 안색을 살필 뿐 하느님의 계시를 살피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읽는다고 하며 온갖 위선을 다 부렸다.  


  참된 예언자들은 항상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했다. 그 결과 하느님의 계시를 읽을 수 있는 눈을 받았으며, 그 계시대로 목숨을 걸고 왕과 백성들에게 외쳤다. 심지어 예레미야는 적국에게 항복하라는 말까지 했다. 그러니 참된 예언자들은 온갖 박해와 수난, 결국엔 죽음에까지 이르렀다.


  시간이 흐른 후 유대인들은 진정 옳은 목소리를 내었던 예언자가 누구였든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당부했건만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소리만 들었던 선조들을 원망하였다. 그 죄를 씻기 위해 시신도 없는 참된 예언자와 의인의 무덤을 날조해 치장하였다. 그리고선 자기들 같으면 그런 짓에 가담하지 않았을 거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언자들이 사라진 이후 그들의 조상이 걸었던 길을 똑같이 되풀이 걸었을 뿐이었다.


  “평론가는 예술을 말하나, 화가는 물감을 어디서 사는지 말한다.”는 경구가 있다.

 

  바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종교 평론가였다. 그들은 참된 신앙이 있는 곳을 가리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종교라는 학문을 한 것이었다. 그것마저도 오직 지나간 과거만을 이야기 했을 뿐이었다. 과거에 정지된 시간 속에서 박제된 삶만 살았다. 현재와 미래에는 두 눈을 감아 버렸다. 과거와 미래를 함께 아우르는 시각을 통해서 현재를 알려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새로운 가르침을 알아보는 창의성을 무시했다.


  예수님께서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한눈에 통찰하시고 가르침을 주셨다.

바로 신앙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밝혀 주신 것이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요한 8,58)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요한 8,28)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요한 4,23)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 라는 오늘 복음 말씀은 회칠한 무덤처럼 죽어 있는 종교 대신에 살아있는 신앙을 찾으라는 반어법이며, 준엄한 요구이다. 자신의 좁은 시야를 미래와 과거에까지 넓히고 새롭게 열린 눈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신앙을 찾으라는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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