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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5) 장미향(薔薇香) 할머니/김연준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30 조회수852 추천수2 반대(0) 신고

 

                                                   글쓴이: 소록도 성당 김연준 보좌신부님

 

 

소록도 병원 한 간호사가 내게 말했다.

 

"신부님, 참 이상한 일이 있어요. 입원환자 중 천주교 신자인 할머니가 계신데 가끔 그분에게서 진한 장미향이 나요."

 

자기가 그 할머니 담당이라 늘 옷을 갈아 입혀드리기 때문에 잘 아는데, 몸에 향수 뿌릴 일도 없고 더구나 병실에서 도저히 장미향이 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날 병실에 혼자 앉아있는 할머니에게

"심심하지 않으세요?" 했더니

"성모님과 함께 있는데 뭐가 심심해?" 하더란다.

 

나는 그 할머니 병실을 찾아가 침대 옆에 앉아서

'할머니 언제 이 한센병(나병)에 걸리셨습니까? 하고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할머니는 20대 초반에 결혼해서 자식을 두 명 낳고 기르던 차에 한센병에 걸렸다.

두렵고 고통스러웠지만 대대로 내려온 천주교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살은 생각도 못했다.

 

결국 "주님 이 병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고 가족을 떠나 왔다.

자식을 위해서 스스로 가족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가족을 떠나 온 후 마음의 상처 때문인지 한센병 뿐 아니라 숱한 병들을 앓게 되어 70 이 넘으신 지금까지 온갖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

 

"신부님 저는 네 번 큰 수술을 받았고 네 번 사경을 헤맸습니다.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 투석을 해야 하는데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너무 큰 고통이 오면 하느님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기도도 되지 않습니다.

얼마 전 다른 병원에 가서 투석을 하는데 피를 넣기 위해 목에다 구멍을 뚫고 몇 시간 동안 꼼짝도 못한 채 비명 지를 힘도 없어서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으니 옆에 있던 간호사가 같이 울더라고요!" 한다.

할머니의 깊은 아픔이 느껴졌다.

 

 

'이 할머니는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받아야 할 고통을 당신이 대신 받고 사시는구나.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지만 주님의 눈에는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보이겠구나. 그렇다. 할머니가 또 한분의 예수님이시구나!'

 

우리는 누군가가 불쌍하다고 하면 의식주나 건강의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사제로 살다보면 진짜로 불쌍한 사람을 더 확실히 보게 되는데 그것은 희생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자기만족을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부도덕한 일을 하고도 그것을 부끄러워 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스럽게 떠벌이는 사람, 이 사람이야 말로 진짜 불쌍한 사람이다.

 

사람은 사랑하면 언제나 희생을 하게 되고 고통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인내하게 된다.

결국 인생은 두 가지의 길로 결정된다.

 

눈물로 시작해서 기쁨으로 마무리하는 아름다운 인생과

먹고 마시고 즐기다 결국 숙취로 끝나는 인생!

 

+++++ 얼마 전 안나 할머니의 장례미사가 거룩히 봉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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