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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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31 조회수805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6년 8월 31일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Stay awake!
For you do not know on which day your Lord will come.
(Mt 24.42)

제1독서 코린토 1서 1,1-9

 

복음 마태오 24,42-51

 

탄광촌에 한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친구들과 놀다가 우연히 아름다운 빛을 내는 보석 하나를 주웠어요. 날이 저물어 탄광에서 아버지가 돌아오자 소년은 자랑스럽게 보석을 내밀었지요.

“아빠, 이것 보세요. 예쁘죠? 놀다가 주웠어요. 난 이런 보석 같은 사람이 될 거예요. 늘 이렇게 반짝이는 보석 같은 어른 말이에요.”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한참 동안 소년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창가에 걸려 있는 호롱불 쪽으로 걸어가 성냥으로 불을 밝혔습니다. 어두웠던 방이 환해졌지요. 그리고 아버지는 소년에게 호롱불을 보여주며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보석 같은 사람보다 이런 호롱불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소년은 바람만 불면 훅 꺼져 버리는 보잘것없는 호롱불 같은 사람이 되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아들아, 보석은 태양 아래서만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단다. 태양의 힘을 빌려 빛을 내는 건 참된 빛이 아니야. 너는 이 호롱불처럼 세상이 어두울 때 제 몸을 태워 세상과 사람들의 가슴을 환하게 밝혀 주는 사람이 되어라.”

이 아버지의 지혜가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석이 훨씬 아름답고 가치가 있을 것 같지만, 어쩌면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몸을 태워 모든 것을 환하게 밝혀 주는 호롱불이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들은 이 소년처럼 호롱불보다는 자신만을 뽐내려고 노력하는 보석과 같은 삶만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언제 주인이 올지 모르니 항상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냥 깨어 있으면 될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주인이 늦어지는구나.’라는 생각으로 동료들을 때리고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것 역시 깨어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예상치 못한 날에 주인이 돌아와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깨어 있다는 것은 앞선 아버지의 말씀처럼 호롱불과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세상에 빛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보석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태워서 세상을 밝게 비추는 호롱불과 같은 사랑의 실천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행복을 주제로 논문을 썼고, 이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까요? 아니지요. 왜냐하면 행복은 앎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해지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깨어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깨어 준비하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의 실천을 위해 잊지 못할 쇼를 연출해보세요.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가진 사람('좋은 글'에서)


 

한 사람이 밤에 동네 어귀를 돌아 집으로 가다 넘어졌습니다. 아래를 보니 땅 속에는 깊숙이 박힌 돌멩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투덜거리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귀가 시간에 쫓겨 바쁜 걸음으로 걸어가던 그 사람은 다시 넘어졌습니다. 어제 그 자리, 그 돌멩이 때문에.

그날 이후로 그 사람은 여태껏 단 한 번도 그 자리, 그 돌멩이에 걸려 넘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는 두 번의 경험으로 인해 그 길은 돌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 때문에 스스로를 미워한다거나 너무 지나치게 자신을 실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살아가면서 저지르게 되는 실수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도 어떤 사람은 그 실수를 통해서 가르침을 얻게 되며 다시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지만, 어떤 사람들은 온통 관심을 실수를 저지른 자신을 미워하고 책망하는데 집중시키고 있는 탓에 더더욱 위축되어 가기만 합니다.

실수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실수 이후에 스스로를 자책하느라 헛되이 보내는 시간이 더 나쁜 것입니다. 때론 지나치게 완벽한 사람보다는 가끔은 실수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더더욱 인간미를 느끼게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So too, you also must be prepared,
for at an hour you do not expect, the Son of Man will come.
(Mt 24.44)


 

 

Romance On The Sh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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