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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깨어 있는 자.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31 조회수1,169 추천수4 반대(0) 신고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만일 그가 못된 종이어서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고”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마태 24,42.45.48.50)


  복음서에 나오는 비유를 이해하려면 세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보아야한다고 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당시 장면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때에는 직접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듣는 청중이 있을 터이니 예수님께서 청중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친숙하고 쉽게 풀어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러니 요즘들어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그런 자리에서 어려운 우화를 이야기 했을 리 없다고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우리도 복음서의 비유 말씀을 너무 어렵게 이해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일어나거나, 아니면 의외이지만 가능한 사례를 주로 비유로 드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듣는 사람들에게는 깜짝 놀랄 소재와 주제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또 각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골라 그 당시 상황에 맞게 편집요소를 덧붙여 초기 공동체와 후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려 했습니다. 우리는 그 의도도 읽어내야 합니다. 또 복음서를 읽는 우리의 상황에서 비유의 말씀을 알아듣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 세 가지 상황을 모두 염두에 두는 새로운 해석인 묵상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종은 유대인을 지칭하고 또 그중에서도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지칭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의 뜻은 “그 지도자들에게 하느님께서 그 백성을 잘 보살피라는 사명을 주었는데도 오히려 백성을 억압하고(때리고) 흥청망청 거들먹거렸습니다(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며). 그러니 주인이 돌아와 그들을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만들 것이다.”입니다.


 “제때에”라고 번역된 그리스어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어에서 시간을 뜻하는 카이로스(kairos)와 크로노스(kronos)가 있습니다.  두개의 단어가 약간 의미가 다릅니다. 카이로스는 그 의미에 “알맞은, 무르익은, 정황이 일어나는, 제 철, 때에 다다른, 필요한 때”등 시간에 ‘심리적인 시간’을 포함합니다. 크로노스는 정확한 시간, 시각 등 ‘물리적 시간’이 우선됩니다. 그러니 카이로스를 번역한  ‘제때에’ 의 본뜻은 백성들이 원하는 때, 꼭 필요한 때라는 말입니다. 일하는 사람이 편한 때가 아닙니다.

 

  또 45절이 “내주게 하였으면”으로 조건문처럼 번역되어 있지만 그리스어 본문은 관계대명사 문장입니다. 우리말에는 관계대명사 문구가 없어 불가피한 해석입니다. 본뜻은 '하려면 하고 아니면 마는 조건'이 아니라, 주인이 처음부터 종에게 일을 맡긴 것입니다. 종들이 수행해야 될 당위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되는데 못했다는 지적을 듣고 청중들이 얼마나 통쾌해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와는 반대로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이말에 가슴이 뜨끔했을 겁니다.  “충실하고 슬기로운”도 ‘믿음(pistis)’ 에서 파생한 단어(pistos)를 써 믿음을 강조합니다.


  마태오 공동체에서는 약속한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자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해석이 필요했습니다.  깨어있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주인이 늦어지는 구나’ 하고 다른 마음을 먹은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에게 경계하는 말로 이 비유를 해석하여 기록했으며, 저자는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라는 편집요소를 말미에 첨가 했습니다. (이 단문은 마태오에 6번, 루가에 1번 나온다.)

‘거기에서’ 는 마태오 22,13에도 나오는데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를 지칭합니다. 영적인 차원에서 잠들어 있는 곳을 말합니다. 믿음을 잃고 준비를 소홀히 한 사람들이 겪는 회한을 뜻합니다. 루가복음 15,13(돌아온 아들을 반갑게 맞는 아버지의 비유)에서 말하는 작은 아들이 고통을 겪는 ‘먼 고장’ 이 바로 '거기' 입니다. 그가 스스로 선택한 곳입니다.


 오늘 우리는 “깨어 있어라.” 는 예수님의 말씀을 새롭게 알아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회에서 갈수록 우리의 신앙이 축소되고 설자리를 잃어만 가는 듯 한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럴 때 너무나 슬퍼집니다. 상대에게 우리의 신앙을 제시했다가 배척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또 우리 자신도 삶의 고난에 좌절하여 땅바닥에 구르고 싶은 유혹이 들만큼 우리의 신앙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 들어날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신앙이 정체된 듯 한 느낌을 받습니다. 무언지 모를 답답한 심정에 빠집니다.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 주기를 바랍니다.

 

  바로 하느님의 계획에 대한 신뢰가 줄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하고 계시는가?” 하며 질문하면서도 막상 그 답을 찾으려 하지 않고 눈감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을 손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세계 안에 엄연히 있고, 우리와 교회 그리고 온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깨어있는 자는 지금 이 자리에 예수님과 하느님께서 주신 성령을 알아보는 자입니다. 오셔야 되는 분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와 계시는 분으로 성령을 모시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성령을 언제나 선택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잠이들 겨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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