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아내는 목이랍니다. 류해욱 신부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01 조회수1,207 추천수5 반대(0) 신고

  아내는 목이랍니다


  오늘 제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창세기에 처음 언급되었고 예수님께서 창세기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셨던 결혼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려줍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

  ‘떠나다,’ ‘합하다,’ ‘한 몸을 이루다’는 결혼의 본질을 이루는 세 요소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부모로부터의 정신적인 자유를 의미하며 자유로운 결단을 뜻합니다. ‘합한다’는 것은 이제 서로 사랑의 일치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창세기에서 드러나는 이 결혼의 본질을 분명하게 재천명하시면서 결혼의 불가해소성과 절대성을 강조하셨지요. 하느님이 짝지어 준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신 것은 결혼이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말씀이지요. 모든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

 

  아내 되시는 분들! 솔직히 이 대목에서 탁 걸리지요. 부부가 동등한데 왜 남편이 아내의 머리냐고 항변하고 싶으시지요? 제가 처음 메쥬고리예 성지 순례 때에 발현 증인 미리야나에게 들은 말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말한 대로 남편이 아내의 머리 맞답니다. 그런데 잘 들어보십시오. 아내는 남편의 목이랍니다. 머리가 움직이려면 목이 움직여야 하지요. 남편이 가장이지만 실제로 남편을 움직이는 사람은 아내이고 따라서 세상을 움직여 나가는 사람도 아내랍니다. 여러분들, 이 말에는 얼른 동의하시지요? 하하.

 

  틱낫한이 [기도]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해요.

  자기가 아는 어느 여인이 도박에 빠진 남편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답니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과 아이들을 내팽긴 채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있다고 원망했지요. 그녀는 가장 없는 집에서 홀로 집안을 돌보느라 밤낮없이 고생하고 있다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지요. 불교신자였던 그녀는 날마다 절에 가서 기도를 했답니다. 부디 부처님의 도우심으로 남편을 도박의 늪에서 헤어나게 해 주십사는 기도였지요. 틱낫한 스님은 물음을 던집니다. “이 기도가 제대로 된 바른 기도일까요?”

 

  여러분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대로 된 기도입니까? 제가 발달 장애아이들 모임인 상록수 자활센터에서 미사를 하면서 어머니들에게 이 물음을 던졌더니 어머니들은 가만히 묵묵부답인데 한 아이가 “네, 제대로 된 기도입니다.”고 큰 소리로 또박또박하게 대답했지요. 하하.

 

  여인은 간절히 기도했지만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남편에게 돌린 채 그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불교의 스승들은 기도할 때, “반드시 먼저 자신을 통찰하라.”고 가르친답니다. 틱낫한 스님은 남편과 아내는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남편의 문제는 아내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명상을 하면 자신과 다른 이와의 연관성과 문제의 진정한 원인을 알게 된답니다. 이러한 이해 없이 원망의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올바른 기도가 아니라고 합니다. 틱낫한 스님은 이 여인이 스스로를 깊이 돌아보았다면 남편과 자신의 깊은 연관성, 둘이 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먼저 아내가 변화되고 이어서 남편도 자연스럽게 달라진다고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아내의 본분에 이어서 남편의 본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은 이렇게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말은 참 많이 듣고 우리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어요. 그리고 사랑이 결혼 생활을 의미 있고 행복으로 이끌어준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인지, 또는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하는지, 또는 이 사랑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통 상대에 대한 호감, 매력, 친절, 봉사 등을 사랑과 혼동합니다. 그것들이 그 자체로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은 깨달음에서 옵니다. 우리의 바람, 기대, 욕구, 상상 속에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깨달음입니다. 그 깨달음을 얻는 그만큼 우리는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해 우리가 만든 어떤 관념을 사랑하는 것이든지, 아니면 그 사람이 줄 수 있는 어떤 효과, 예컨대, 매력이나 외모나 욕구의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지요.

 

  사랑을 한다는 것은 먼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기에 이것을 위해서 훈련이 필요합니다. 에릭 프롬이 사랑은 art (예술)이라고 했지요. (사랑의 기술이라고 옮겼지만 저는 예술이라고 옮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사랑이라는 예술도 다른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익히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때로는 고통이 따르는 훈련을 하지 않고 그냥 사랑을 얻으려고 합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 없이 그냥 자기가 만든 감정으로 ‘사랑한다,’고 하고는 그 상대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을 때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그것이 정말 사랑입니까? 아닙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면, 아무리 어려움이 닥쳐도 그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어려움을 지니고 있는 많은 부부들이 오늘 바오로의 말씀, 아니 이미 예수님께서 창세기를 인용하시면서 하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사랑이라는 예술을 완성시켜 나가기를 바랍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