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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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러분도 물러가고 싶습니까? / 최시영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01 조회수868 추천수8 반대(0) 신고

  평화로운 토요일이다. 무더위가 조금 물러가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평화를 느낀다. 올 여름 더위 때문에 그만큼 많이 힘들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오후 늦게 내일 주일미사 강론을 준비하기 위하여 상을 펴고 자리하였다. 문득 창을 가득 채운 창밖의 감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집에 있는 감나무 세 그루 중 지난 두 해 동안 열매를 제일 적게 내는 나무였다. 그러나 내 방 창에 바로 붙어 있는 감나무이기에 나와 가장 가까운 감나무이다. 그러고 보니 그 나무는 항상 그렇게 내 방 창문을 가득 채우며 있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나무가 거기에 있었음을 느끼거나 그것에 대해 감사드려 본적이 없었다.

 

  바람결에 이는 푸른 나뭇잎들은 마치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괜찮아, 친구야.’ ‘지금이라도 이렇게 알아주어서 고맙고 행복해.’ 라고. 마음에 잔잔한 감사와 평화가 올라온다.

 

  사실 더운 여름에는 푸른 잎으로 뜨거운 햇볕을 가려 주었고, 자신의 빛깔로 나의 눈을 시원하게 하여 주었으며 계절 따라 자신을 다양하게 변화시켜 가며 내가 기쁠 때나 좌절 했을 때, 행복하거나 고통스러웠을 때 ... 등등 내 곁을 항상 지켜 주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던 것이다.

  하느님은 오늘 이렇게 이 감나무를 통해서 당신을 알려주셨다. 하느님께서도 이 감나무처럼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그래서 기뻐하고 감사드리지 못했던 순간에도 항상 그렇게 내 곁을 지켜 주셨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최근에 읽었던 요한복음 6장의 빵의 기적과 가파르나움 회당에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빵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들이 감나무를 통해서 다가온 여운들과 함께 새롭게 읽혀진다.

 

  “썩어 없어질 음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음식을 얻으려고 힘쓰십시오. ...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이를 여러분이 믿는 것, 이것이 곧 하느님의 일입니다. ... 내가 생명의 빵입니다. 내게로 오는 이는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고, 나를 믿는 이는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 나는 생명의 빵입니다. 여러분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니 이것을 먹는 이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입니다. 이 빵을 먹는 이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줄 빵은 곧 내 살로서 세상의 생명을 위해 주는 것입니다. ...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이도 또한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입니다. 예수께서는 가파르나움에서 가르치면서 회당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참조; 요한 6, 26-59)


  요한복음 6장의 말씀은 우리가 어떤 음식을 얻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인가에 따라서 이 말씀에 대한 인식과 그 반응이 확연히 구분된다. 과연 내가 얻으려 힘쓰는 음식이 썩어 없어질 것들인가? 아니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들인가? (세상적인 명예, 지위, 권세, 부귀, 인정, 능력, 안전... 등 인가? 아니면 예수님, 복음, 하느님 나라, 사랑... 등 인가?) ...

 

  참으로 중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반면 이런 생각도 든다. 이 질문이 이토록 중요하기에 어쩌면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서기를 두려워하고, 주저하고,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 마땅히 도전되어져야 하고 마땅히 힘들어 해야 할 질문을 회피한다면 나중에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우리가 피하려는 것 이상임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이번 주일 복음에서는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두 부류로 나누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 부류는 “이 말씀은 모질구나. 누가 차마 그것을 귀담아 들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던 사람들로서 결국 돌아서서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은 사람들이다.

 

  또 한 부류는 열두 제자와 같은 분들로서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물러가겠습니까? 주님은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계십니다.”라고 하면서 예수님 곁에 끝까지 머물기를 선택한 분들이다. (참조; 요한 6, 60-69) 우리가 ‘어떤 음식을 얻으려 힘쓰는가?’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세상에 대한 인식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선명한 장면이다.

  내 방 창밖의 감나무처럼 예수님께서도 2000년 전부터 지금까지 항상 그렇게 거기에 계셨다. 그리고 썩어 없어질 음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음식을 얻도록 힘쓰라는 말씀을 계속 들려주신다. 이제 가을이 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는 계절이 되었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듯이 이번 가을에는 그렇게 항상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 현존을 우리 온 존재로 느끼고 알아 뵐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또한 가을이 오면서 가지고 오는 풍성한 열매를 맛보고 즐기듯이 이번 가을은 예수님 현존을 통해 건네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맛보고 즐기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가파르나움 회당의 시몬 베드로도,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도, 돌 무화과나무 위에서 예수님의 초대를 받아들였던 자캐오도 모두 예수님 현존과 그 선물을 깊게 맛보고 눈여겨보았던 분들이다. 마치 오늘 화답송에서 노래한 시인의 노래처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시편 34)

  예수님께서는 굳이 열두 제자에게 물으셨다. “여러분도 물러가고 싶습니까?” 물론 그들이 물러가기를 바라신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다만 그만큼 중요한 질문이라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이번 가을을 여는 질문이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그분 현존을 알아듣게 되면 마치 감나무가 그러하듯 행복해 하실 것이다.

 

                                

                      <예수회 홈 페이지에서 /최시영 신부님(이냐시오 영성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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