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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9 > “신부님, 영광입니다”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01 조회수966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신부님, 영광입니다”



   광주 지산동에 있을 때의 일이다.

   성당에서 차를 타고 3분 정도 올라가면 무등산 관광호텔이 있고 그 앞에는 온천 대중탕이 있으며 그리고 다시 걸어서 20분 정도 올라가면 깼재라는 무등산 자락의 작은 고개가 나오는데 거기에는 각종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래서 새벽 미사가 끝나면 산에 오르는 일이아주 상쾌한 일과였다.


   목욕탕 주인은 호남동성당에 있을 때 내가 직접 세례를 준 분이라 들어갈 때마다 돈을 받지 않았으며 음료수를 파는 아줌마도 같은 신자라고 나만 보면 요구르트나 다른 음료수를 들고 권하곤 했었다. 아침 출발은 미사와 운동과 목욕으로 항상 최고였다.


   그런데 어느 날 목욕 후 였다.

   호텔 앞 주차장에 세워 둔 성당의 9인승 베스타를 우회전으로 꺾기에는 옆에 주차된 차 때문에 각도가 너무 급해 있었다. 그래서 좌우를 살펴본 후에 차에 올라 일단 뒤로 후진하여 오른쪽으로 꺾으려 했더니 갑자기 ‘퍽’ 하는 소리가 들렷다. 깜짝 놀라 뒤를 보니 어느새 내 뒤에 고급 승용차가 와 있었다. 큰일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남의 차를 받아 놨으니 뭔 소리를 들어도 크게 얻어 들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얼른 차에서 내려 조심스럽게 접근해 보니 승용차의 앞문이 움푹 패여 있었고 뒷좌석에는 어린애가 뉘어 있는데 운전석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금방까지도 차가 없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너무도 어이없는 처사에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누군가가 자판기에 커피를 뽑아 오면서 ‘신부님, 영광입니다’ 하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아마 차 주인인 모양인데 젊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러나 분명히 초면이었다. 과연 이 여자가 어떻게 나올지 나로서는 몹시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러나 도리가 없었다.


   얼른 죄송하다면서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수리해 드리겠다는 제의를 하자 젊은 부인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자기도 신잔데 신부님을 잘 알고 있다면서 걱정하지 말고 그냥 가시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경황이 없던 터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그러자 저쪽에서, 신부님이 안 가시면 자기가 먼저 가겠다고 하더니, 내게 상냥하게 인사를 하고는 망가진 차를 가지고 그냥 떠나는 것이었다. 나는 한동안 넋이 나간 채 멍하니 서 있다가 성당으로 돌아오는데 그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또 고맙기도 했다.


   사제관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영 찜찜했다. 초보도 아니면서 내가 왜 그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생각할수록 자존심이 상했다. 차라리 수리를 해주고 변상을 했어야 마음이 더 개운했을 텐데, 오전 내내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정오가 가까웠을 때 였다.


   전화가 왔는데 웬 젊은 여자였다. “누구시더라” 하며 신분을 물으니 아침에 내가 망가뜨린 바로 그 승용차의 주인이었다. 너무 황공해서 거듭 사과를 하며 변상을 하겠다는 뜻을 전하자 저쪽에서 그랬다. 아무래도 신부님께서 부담 되실 것 같아 전화를 했는데 정 그러시면 점심이나 한 번 사라는 것이었다.


   그건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악연이 좋은 인연된다’고 젊은 자매와 함께 레스토랑에 앉아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나중에, 아주 나중에 사람을 통해 알고 보니 그녀는 서을에 있는 모 검사의 부인이었다.


   남의 실수에 대해 “영광입니다” 하며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더 환하게 밝아질 것인가. 얼마 전 호남고속도로를 과속으로 달리다가 순찰경관에게 걸렸는데 그가 나를 보자 갑자기 경례를 딱 부치면서 그냥 가시라는 것이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지만 친절하게 웃던 그 경찰도 영 잊혀지지 않는다.


  “신부님, 영광입니다!”

   

    문득 서울로 이사 간 그녀가 생각난다.

http://my.catholic.or.kr/vegabond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중에서/ 강길웅 요한 신부 (소록도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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