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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7) 말씀> 십자가의 선포 = 하느님의 사랑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01 조회수694 추천수1 반대(0) 신고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 "

 

지혜로운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논객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코린 1,18-21)

 

 

의심의 여지없이 십자가는 이제 그리스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도처에서 십자가를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지붕 위에 세워져 있기도 하고, 집안의 벽에 걸려 있는가 하면, 목걸이 줄에 매달려 있기도 합니다.

심지어 자기 팔뚝에 십자가를 문신으로 새긴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왜 우리는 한때 고문의 도구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상징했던 것을 받들어 모십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으로써 그 의미를 완전히 바꾸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한때 죽음을 의미했던 것이 지금은 생명을 상징하고, 한때 미움과 단죄를 의미했던 것이 이제 사랑과 자비를 나타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 아들의 어리석게만 보이는 죽음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죽음으로 모든 믿는 이들이 생명을 얻게 되리라는 사실을 당신의 지혜로써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십자가는 실로 하느님 지혜의 신비 안에서

 

가장 놀라운 진실,

 

 

"하느님이 세상을 그토록 사랑하셨다!"

 

는 진실을 선포합니다.

 

오늘의 복음(마태 25,1-13)에서는,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지혜와 어리석음이 어떻게 다른지 그 한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어찌 보면 하느님 사랑을 받아들일 여지가 없는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특별히 준비한 옷과 부케,

행복한 부부에게 줄 선물,

피로연을 위한 축배 준비 등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추고 있을 테지요.

 

그런데 정작 등잔불을 피우는 데 쓸 기름이 부족한 것을 보면, 그들이 현실에 대단히 어둡든가 아니면 생각에 있어 지혜가 모자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준비했지만, 막상 신랑이 왔을 때 맞으러 나갈 채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정말이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우리는 슬기로운 처녀 다섯 명을 본받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 마음을 신랑이신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채웁시다.

 

변화시켜 주시는 예수님의 현존이 없다면 십자가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듯이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부족하지 않을 만큼' 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절대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내 삶에서 십자가의 영향을 얼마나 느꼈는가?

 어떻게 해서 십자가는 내게 있어 하느님 사랑과 권능을 담는 그릇이 되었는가?"

 

"성령님, 하느님 사랑의 불꽃이 제 마음에서 계속 불타오르게 해 주십시오.

 저를 예수님에게서 떼어놓는 것은 무엇이든 녹여 없애주십시오.

 성령이시여,

 당신의 지혜와 권능을 알고 싶습니다!"

 

             <말씀지기 2006/9 : 9월 1일 금요일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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