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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름다운 사람. 류해욱 신부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04 조회수694 추천수2 반대(0) 신고

  아름다운 사람


  제주도에 왔다가 장애인 미사에 함께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공동집전을 하면서 강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부탁이었지만 선뜻 응할 수 있었던 것은 경인일보에 지난 일년 동안 5주에 한번 쓰던 시침분침이라는 칼럼에 장애인을 주제로 몇 번 글을 쓴 것이 있어서 그 중에 하나나 두 개를 나누면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한달에 한번 한다는 장애인들을 위한 미사는 아름다운 미사였고 강론을 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제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기 전에 모두가 나와서 둘러서니까 자연스럽게 하트 모양의 서클이 만들어지더군요. 주례했던 신부님과 함께 서클을 한바퀴 돌면서 모두와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미사 후에는 주례 신부님과 함께 모두에게 안수 기도를 했지요. 주례해 주신 현요한 신부님은 혼자하면 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고 하시더군요. 함께 안수 기도하면서 성령이 함께 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제게 은총이었지요.

 

  강론은 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여러분들과도 나눕니다. 지난 5월 초에 썼던 글을 강론 형식의 어투로 바꾼 것입니다.


  취미로 가끔 그림을 그리는 저는 다른 사람의 그림에도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짧은 여행이지만 제주도에 오면 늘 기당 미술관 (제주 화가 변시지의 상설 전시관이 있음)과 이중섭 미술관, 김영갑 사진 갤러리 등을 들리는 편이지요.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볼 때면 그림을 그린 화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그림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가 궁금해집니다. 대개의 경우 그림을 먼저 보고 난 뒤 그 화가에 대해 알게 되지요. 그런데 드물지만 화가의 존재를 먼저 알게 되어 그 화가의 그림이 몹시 궁금해질 때도 있습니다.


  지난 4월 영국의 구족화가 겸 사진작가인 앨리슨 래퍼(Alison Lapper)가 아들과 함께 우리나라를 방문했었습니다. 래퍼는 바다표범처럼 짧은 다리에다 두 팔이 없는 희귀 염색체 질병인 '해표지증(Phocomelia)'을 가지고 태어난 지체장애인입니다. 팔이 없는 그녀는 스스로를 두 팔이 없는 아름다운 조각상 밀로의 비너스에 견주어 ‘살아있는 비너스’라고 부릅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정면으로 맞섭니다. 사회의 편견과 투쟁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해온 그녀는 무엇을 보여주려고 머나먼 이 땅을 찾아왔을까요? 또 우리는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고 느껴야 제대로 만나는 것이었을까요?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가능한 한 장애인들을 많이 만나 그분들이 사회적인 도전을 하는데 긍정적인 힘이 되고 싶다”고 그녀는 말했었지요. 그녀는 장애인들이 다니기 불편한 서울의 거리를 보고는 이 땅의 건물이나 시설이 장애인들을 위해 편리하게 만들어지는 데 자신의 방문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도 했습니다. 자신이 화가로 일할 수 있는 것은 활동보조인 제공을 받는 등 영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한국에서도 영국과 같은 장애인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늘어나기를 희망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녀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우리가 그녀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우리도 빠른 시일 내에 영국과 같은 장애인들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지요. 그녀의 조국 영국에서는 일하고 싶어 하는 장애인을 지원하는 법이 있고, 일할 수 없는 장애인들을 위해서는 물리치료와 활동보조인 지원 서비스 등이 마련돼 있고 양육비도 지원한다고 합니다. 아직 우리에겐 그 같은 일이 꿈같이 멀고 험난하게 여겨지지만 조만간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모든 장애인들의 꿈입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옛이야기처럼 한걸음 한걸음씩 길을 다져가다 보면 의식전환이 일어나게 되고 사회적 연대감과 사회적 토대가 마련되고 정책의 현실화가 이루어지리라고 믿습니다.


  그녀는 한국의 구족화가들과도 만나 서로의 예술세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구족화가는 손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어 발이나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입니다. “예술가에 있어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의욕이지 손이나 입, 발로 예술을 표현하는 데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장애인이 발이나 입으로 표현하기가 말로 형용할 수 없을만큼 힘들겠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서로 다른 몸의 차이가 결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다른 몸의 차이로 인해 자신의 몸을 특별하고 아름답게 작품 속에서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저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그녀의 그림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한 가수와도 만났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의 권리를 위해 당당히 싸우라고 격려했지요. 뿌리 깊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려면 스스로가 좀더 강해져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입으로 또는 발끝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구족화가 앨리슨 래퍼를 보며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신체적 결함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시킨 당당함이 아름답습니다. 신체적 장애를 이겨내고 가정폭력을 극복하고 산다는 것의 의미와 생명의 소중함을 행동으로 일깨워준 삶이 아름답습니다. 장애인이기보다는 예술인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싶다는 다양한 몸의 평등한 삶을 꿈꾸는 적극적인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앨리스 래퍼의 짧은 방문이 긴 여운으로 남아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에 대해 닫혀 있던 마음을 여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 장애인에 대한 심리적·정서적·문화적 장애를 우뚝 넘어서는 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장애인 미사는 오히려 장애인 가족들의 미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봉사자들이 율동, 노래 등 여러 가지 준비를 하여 마음을 모아 주님께 찬미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장애, 비장애 구별 없이 서로 하나로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이 공동체가 세상의 모습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Dust In The Wind / Sarah Bright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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