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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쁜 소식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04 조회수747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루가 4,16-30)


  루가복음 저자를 안셀름 그린 신부는 예수님의 사건들을 이미지로 그리는 화가라고 한마디로 표현했으며, 어떤 신학자는 ‘타고난 이야기 꾼’ 이라고 칭송하였습니다. 오늘 복음말씀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칭찬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네 복음서에 모두 나오는 ‘나자렛에서 무시당하시다’는 대목이지만 루가 저자만 구약의 예언서와 예언자들을 언급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의 약속을 이어 받는 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 목적을 위하여 루가 저자는 이 대목을 세례와 유혹 이야기 이후 첫 공식 활동으로 지위를 부여 합니다. 마르코와 마태오복음에서  첫 공식 활동으로 언급되는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 내용을 루가 저자는 의도적으로 이 대목 다음에 배치합니다. 그만큼 구약의 약속이 “오늘”, “너희가 듣는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선포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또 앞 대목인 예수님의 세례 장면도 루가 저자는 세례자 요한의 투옥 사건 이후에 배치합니다. 마치 감옥에 있던 분이 그일 때문에 잠시 나온 것 같은  흐름입니다. 이는 루가 저자가 인류 '구원의 역사(Heilsgeschichte)'를  “구약의 시대”, “예수의 시대”, “교회의 시대”로 3 分해서 보려는 신학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구약의 인물인 세례자 요한이 퇴장하고 예수님의 시대가 오늘 “희년 선포가 이루어 졌다.”는 선언과 함께 장엄한 시작을 알리는 것입니다. 마치 위대한 작곡가가 서곡을 마친 후에 새로운 악장을 관악기와 팀파니를 동원하여 웅장하고 거룩하게 시작하는 느낌입니다.


  또 루가 저자는 이 대목에서 얼핏 놓치고 지날 수도 있는 숨은 단서를 두 가지 더 마련해 두었습니다. 회당에서 예수님의 선포를 들었던 마을 사람들의 첫 반응이 다른 복음서와 달리 긍정적입니다.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입니다. 이것은 루가 복음서에서만 예수님 수난 과정에서 백성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는 장면을 삭제했으며,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라고 말씀하신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루가 23장).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도 시돈과 시리아 지방을 거론합니다. 즉 루가 저자는 예수님의 새 백성 공동체에 옛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이 포함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자렛을 떠나신 이유는 당신의 사명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더 큰 사명을 위한 출발이었습니다.


  올해는 모차르트 탄생 250 주년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조명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그는 연주회에 앞서 관객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답니다. “나를 사랑하세요? 나를 정말로 사랑하세요?” 그리고는 관객들이 진정이던 가식이든 사랑한다는 답을 해야 비로소 연주 했답니다. 그는 사람들을 진정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의 음악으로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청년이 되자 자신이 태어난 잘츠부르크가 자신에게 더 이상 사랑을 베풀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천재성을 이용만 하고 진정한 자유를 주지 않는 그곳을 과감히 떠납니다. 그래서 그는 음악사에서 최초로 가난해져야 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가 필요로 자유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창조적이기 위해서 가난과 자유를 선택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빈에 정착합니다. 찌든 가난이 그를 압박합니다. 그는 호구지책으로 음악 과외 교사도 하고 작곡의뢰를 받아 창작에 열중합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귀족들이 베푸는 흥미 본위의 안방 연주에는 참석하지 않습니다. 평민들이 좋아하고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을 작곡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함을 음악으로 표현한 그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사랑과 용서를 인류에게 선사했습니다. 그가 작곡한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유괴’, ‘돈 지오바니’,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는 모두 사랑과 용서가 주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인생의 고통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사랑과 자유를 위해 고난을 스스로 선택한 만큼 그의 음악은 우리에게 침울함과 인생고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의 음악은 그것을 승화시키며, 예수님의 십자가처럼 순수한 어리석음을 표현할 줄 알았습니다. 그가 죽은 해에 작곡된 클라리넷 협주곡과 마술피리는 불후의 명작이며, 레퀴엠은 최후의 미완성곡이 됩니다. 그는 임종 시에 ‘라크리모사’를 불러달라고 하고 그 가락을 읊조리며 숨을 거둡니다. 그의 장례미사는 소수의 지인들만 참석했으며, 이에 슬퍼한 하늘에서 천둥과 폭풍우가 몰아쳐댑니다.  못난 인간들은 모두 도망쳐 버립니다. 그의 무덤은 아무도 모르는 채 하늘과 땅만이 아는 비밀 속에 묻혀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서 기쁨으로 울려 퍼질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이야 더 기쁜 소식으로 영원히 찬미 받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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