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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는 마음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05 조회수948 추천수9 반대(0) 신고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는 마음

 

 

   거룩한 감자이야기


   우리 본당이 위치한 지역은 도시와 농촌이 혼합되어 있는 곳이다. 많지는 않지만 농사를 짓는 분들도 계시고, 소일거리로 채마밭을 가꾸는 분들도 있다.


   상추도 심고, 고추도 심어서 거둘 때면, 어김없이 내 식탁에도 신선한 채소가 듬뿍 올라온다. 본당에 사는 신부들을 먹이기 위해 신자분들이 가져다주는 것이다.


   어떤 때에는 아침 일찍 사제관 문 앞에 까만 비닐봉지가 걸려 있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른 아침에 막 따온 상추며, 깻잎이며, 열무 등이 담겨져 있다. 그런 아침이면 정겨움이 물씬 느껴진다.


   본당을 이전하기 위해 매입한 부지가 있는데 시간적으로 아직 여유가 있어서 이곳을 신자분들에게 개방했다.


   상리본당 ‘거룩한 감자’


   주말농장처럼 아이들과 함께 이것저것 심고 가꾸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러면서도 꼭 한 가지만은 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교구 내에서 가장 어려운 본당이라고 할 수 있는 ‘상리본당’을 위해서이다. 상리성당은 신자수가 200명이 채 안 되는 초미니 본당이다.


   신자분들도 우리 농촌의 현실이 그러하듯이 연세가 드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본당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본당 신부님은 씩씩하다.


   매년 봄이면 상리본당은 주변의 땅을 빌려 감자를 심는다. 감자를 팔아 1년 동안 본당을 운영하고, 매 주일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주변부대에서 오는 100명이 훨씬 넘는 군인들에게 점심을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감자를 심을 때면 같은 지구에 속한 신부님들도 합세해 힘을 보태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같은 경우에는 그저 분위기나 잡고 시늉이나 내는 수준이다. 올해엔 일산의 마두동본당 복사 아이들과 가족들도 함께 해서 감자 심는 일이 더더욱 즐거운 일이 되었다.


   이제 지난 봄에 심어 놓은 감자를 수확할 때가 되었다. 나는 우리 본당 신자들에게 ‘거룩한 상리 감자’를 구입해달라고 홍보한다. 상리 감자를 거룩한 감자라고 표현하는 것은 여러 이유에서다.


   우선 상리 감자는 ‘신부님들과 신자들이 심으시고 하느님께서 키우신 감자’다. 일머리를 몰라 매우 서툰 손이지만 함께 살고 있는 동료 신부와 신자공동체를 위해 시간을 내어 정성을 모았고, 하느님께서 알알이 키워 주신 것이다.


   상리 감자는 또한 사랑이 담겨 있다. 본당 신자들을 위해 애쓰시는 신부님의 사랑이 있고, 어려운 본당이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시골 어르신들의 사랑이 배여 있다.


   뿐만 아니라 상리 감자는 집 떠나와 군복무를 하고 있는 젊은 군인들에게 엄마의 정을 전하는 나눔의 감자다. 그래서 상리 감자는 평범한 여느 감자와는 달리 ‘거룩한 감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나의 생각에 다소의 과장이 있음을 우리 신자들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믿어 주는 눈치다.


   그래서 올해도 많은 분들이 본당 신부의 말에 현혹(?)되어 감자를 주문해 주었다. 감자가 어떻게 거룩하냐고 반문도 하지 않고, 가격이 싸네 비싸네 따지지도 않고 웃음을 머금으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주문했다.


   가슴 따뜻한 우리 신자들


   나는 이런 우리 본당 신자들의 마음을 안다. 우리 본당 신자들은 감자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물건값 하나도 꼼꼼히 따져가며 살아가는 신자들이 가격에 전혀 상관없이 기꺼이 감자를 주문한 것이리라.


   열악한 환경에도 열심히 신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신부님을 위해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교회를 사랑하는 그 마음을 위해서,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 사랑을 보태준 것이리라.


   나는 이런 신자들을 사랑한다. 내가 이 공동체와 함께하는 것을 커다란 기쁨으로 생각한다.


   주문한 감자가 배달되면 가슴 따뜻한 우리 신자들과 잘 삶은 감자를 나누며, 사랑을 나누며 지내야겠다.



                      - 추교윤 신부(의정부교구 덕정본당 주임) 

 

            
                         A Comme Amour - Richard Clayderman
가을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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