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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말씀의 위력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05 조회수960 추천수1 반대(0) 신고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루가 4,34-36)


  루가복음 저자는 역시 뛰어난 이야기꾼입니다. 문장의 뉘앙스를 세심하게 고려하여 글을 적습니다. 어제 복음말씀에서도 이야기 순서를 바꾸어 배치하여 자신의 신앙의도에 맞게 저술하였습니다. 또 두 가지 숨겨진 단서를 마련하여 이상적인 공동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늘 짧은 구절 속에서도 그런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한 단어의 적절한 선택으로 저자는 자신의 공동체에게 예수님의 진면목을 보여 줍니다. 초기 공동체 시대에 악령이 들린 사람을 치유하는 순례 치유사나 마술사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들의 행동과 예수님의 능력을 차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환자를 치유할 때 온갖 기도와 주문, 춤이나 부적, 행위를 총동원하여 요란 법석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고, 악령이 든 사람이 더 날뛰어 혼란만 주었습니다.


  이와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한두 마디 말씀만으로 악령을 제압하였고 그에게서 내쫒아 버리십니다. 그 밖에 다른 쓸데없는 동작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옆에 지켜보던 사람들이 놀라서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와 힘이 깃들여 있다고 수근 댑니다. 악령이 들린 사람을 치유한 놀라움만큼이나 그 단순하나 권위 있고 힘 있는 말씀에 놀랐다고 저자는 적는 것입니다. 마르코복음서의 병행 구절에서는 루가와는 달리 가르침(didache)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말씀(Logos)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다바르(dabar)입니다. 그 어원은 ‘뒤에 있는 것을 앞으로 몰다.’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단순히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실천을 지니는 동적인 힘을 의미 하였습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이사야 55,10.11.)


  특히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실현된다는 것을 유대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상을 잘 알고 있던 저자도 그 공동체에게 예수님의 신원을 이 “말씀”이라는 단어 하나로 가리켜 보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는 악령의 말을 증거한 셈입니다.


  복음서에 의하면 악령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인지 바로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말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자기들의 죄를 뉘우치거나 용서를 구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고 반문만 할 뿐입니다. 아니면 다른 데로 보내 주시도록 요청할 뿐입니다. 악령들은 예수님과 어떤 관계도 맺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성 이냐시오께서 지은 영신수련 50항을 보면 하느님을 모시던 천사들이 단 한번 죄를 지었지만 지옥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고 용서를 빌지 않아 그렇게 됐다는 것입니다. 원래 천사였던 악마는 하느님께 받은 은총을 모르고 교만한 마음이 들어 하느님을 배반하여 악마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짓는데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회개하고 용서를 비는 것을 기다려 주고 계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깨달으라고 합니다. 자주 죄를 짓지만 자기 죄를 성찰하고 용서를 구하여 하느님의 진영에서 떨려나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영신수련 첫째주간 마지막과 둘째주간 ‘두 개의 깃발’ 참조)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을 그저 안다는 것보다 믿는 것이, 또 죄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 더 요구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치유받을 것이며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출처;야후블로그<이브의 행복으로 가는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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