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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1 > “이것이 뭔 일이다냐?”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06 조회수966 추천수10 반대(0) 신고

                

                       “이것이 뭔 일이다냐?”


   육지에서 바다를 건너 소록도로 들어오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배가 시내버스처럼 자주 있는데다가 시간도 7,8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까지 건너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산다는 게 실로 녹녹한 것은 아니다! 여기 한 할머니의 넋두리를 들어보자.


   “한 두어 달 된 성싶어. 피부에 무담시(공연히) 뭣이 나고 안 좋아져서 병원에서 진찰을 받은께 피에 못쓴 것이 들었다는 것이여. 참말 그 소리를 들은께 하늘이 놀놀해. 나가 그때 양로당 살던 땐디 어찌케 해야 쓴다냐 싶어 속이 미쳐 불겄어.


   병원서 양로당에 기별을 했는 갑서, 양로당에 갔드만 사방 문을 닫아 놓고 여간 단속을 잘혀. 소매(소변)쪼깐 본다 하믄 겨우 밖에 나올 수가 있었응께.


   약준 것도 다 흩어 불고, 이런 거 먹고 멋헌다냐 싶드만. 열흘을 통 암 것도 안 묵은께 사람이 영 못쓰게 되불드만. 인자는 소매질도 못 가겄는 거라. 땅도 뭣도 안 보이고 창시(창자)까지 넘어 올라고 그란디, 영 죽겄어.


   나보고 복 있다고 복녀라고 이름 지어 놓트만, 이 일이 뭔 일이다냐. 이럴라고 그고상(고생)하고 야든까지 묵도록 살았던고 싶드만.


   근디, 사람 일이라는 게 자기 맴대로 되는 건 아닌갑서. 같이 사는 사람들헌티 미안하기도 허고, 애써 간병하는 사람 생각도 해줘야지 싶어 나맨크롬(처럼)병든 사람들 사는 데로 간 거여.


   거길가니 나 같은 병 걸린 사람만 있어서 맴은 편허드만. 어뜬 아짐씨가(그 사람은 원래 집이 서울이랴) 소록도 야글(이야기를)험시롱, 이왕에 이러고 된 거 거그 가면 참 좋다 그럼시로 소록도 야글 많이 해주대.


   대차나(정말) 그라믄 한번 가보끄나 싶은 생각은 있어도 선뜻 안 나서지드만. 미적대고 있은께 옆에서 남들이 그렁겨. ‘갈라믄 날 받지 말고 우다닥 가부러, 시집 갈라고 날 받는가?’그러대. 그래서 소록도에 와서 입원한 지 인자 한달 넘었는갑다. 암만 생각해도 이것이 뭔 일이다냐 싶당께. 이런일이 있을 줄 어뜨케 알았겄는가. 오빠 셋에 딸 하나라 오직이나 금지옥엽 자랐는디.


   영감 세상 뜬 지 26년 됐어도 돈도 제법 벌고 그작저작 살만 했는디. 혼자 몸이라 성가신 것 없이 살았재. 아들이 하나 있간 있었는디 난 지 여덟 달 만에 죽고 영감은 일본 군인에 들어갔는디 애기 못 낳는 수술을 해부렸는가 애기가 없었재.


   자식이 없기를 얼매나 다행인가. 요런 병이 들어서 자식이 있었으면 고생을 얼매나 시켰겄어. 영감 없이 수십 년 삼시로도 손끝이 야물어 하는 일마다 잘됐어. 여기저기 다남시로 안 해 본  일이 없고, 나가 요러고 작게 생겼어도 못한 것이 없었당께.


   조카손지가 함께 살자 하는디, 나가 불편해서 따로 살았는디 나이든께 일도 못 하것고, 그래서 돈 주고 있는 양로당에 들어간거여. 가만히 앉아서 화토나 치고, 나가 화토 치면 겁나게 따거든, 노인네들하고 재미나게 살아 볼라고 그랬재. 양로당에서 이태를 살고 삼 년째 산디 피부가 안 좋아진 거여.


   복이 그것밖에 안 된갑서. 닭고기,돼지고기를 볶아 줘도 손에 힘이 없어 집어 먹들 못했는디, 이 병이 딜라고 그랬는갑서. 설 쇠고 난께 눈까지 바락바락 안 보여. 나가 넘 못할 일은 안 했는디...  베 장시함서(장사하면서)넘을 둘러 먹었다냐, 누워서 별 궁리를 다 해 봐도 그런 적 없는디...

넘 도와 주고 좋은 일은 더 할라고 그랬는디, 나가 요러고 있네.


   창밖을 본께 가을인갑는디, 그 양로당은 단풍철에 관광차 불러서 관광 다녔는디, 그것이 작년 일인디.....“


   천형의 섬에 갇혀 평생을 사는 환우들에게 세상은 얼마나 답답할까. 도대체 병은 왜 생기는가. 근원은 알 수도 없는 것이 왜 생사람을 잡아 울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가.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인생이 보석처럼 갈고 닦아지는 것은 아닌가.


   ‘넋두리’의 할머니는 소록도에 입원하신 지 반 년 만인 1998년 봄에 세상을 뜨셨다. 향년 80세였다. 할머니의 ‘야글’ 듣고는 마음이 몹시 아팠는데 단풍철이 되고 보니 가슴이 또 미어진다.

   “이것이 뭔 일이다냐?”

   할머니의 넋두리가 무슨 화두(話頭)처럼 나를 자꾸 붙잡는다.(R)

http://my.catholic.or.kr/vegabond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중에서/강길웅 요한 신부 (소록도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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