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일치의 중심 ----- 2006.9.6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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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06-09-06 | 조회수723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6.9.6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1코린3,1-9 루가4,38-44
일치의 중심
무엇 하나 똑같은 것 없는 유일한 개인들입니다.
이래서 다양성 안의 일치를 주장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공동체가 분열로 조각 날 때 그 소진되는 에너지는 참으로 막대합니다.
그래서 분열을 조장하는 것을 큰 죄로 취급합니다. 육적인 사람들이, 속된 사람들이 될 때 분열은 자연스런 과정입니다.
시기와 싸움으로 갈라진 코린토 교회 신자들에 대한 바오로의 질책에서 이런 진리가 잘 드러납니다.
바오로가 무엇입니까? 아폴로와 나는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정해 주신 대로, 여러분을 믿음으로 이끈 일꾼일 따름입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비로소 다양성 안의 일치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작은 한 부분을 책임 맡은 평등한 동료이자 형제요, 하느님의 협력자라는 겸손의 자각이 있어 공동체의 일치라는 것입니다.
바로 내적일치의 중심인 하느님과 완전히 하나 된 삶이였기에 가능했음을 봅니다.
아니 예수님의 전 활동이 하느님과의 내적일치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하나 되어 갈림 없는 마음일 때 바로 그 사람은 하느님 능력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적일치의 중심인 하느님 나라가 잘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예수님의 삶의 통합을 이룬 내적 중심임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모두가 바라보는 하나의 비전이자 일치의 중심인 하느님이 계실 때 비로소 내적일치요 공동체의 일치입니다.
영원한 삶의 진리입니다.
끊임없이 회개하고 서로 용서하며 하느님 중심을 확인할 때 비로소 공동체의 일치라는 것입니다.
바라보는 하느님 방향이 같아야 일치입니다.
하느님께 찬미 기도를 바치기 위해 모이지만, 나도 살고 공동체도 살기위해 모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루 일곱 번 공동기도를 바친다는 그자체가 공동체의 일치가 얼마나 중요하고도 어려운지를 나타냅니다.
우리 모두 공동체 일치의 비전이자 중심인 주님을 바라보고 확인하면서 주님의 말씀과 성체를 모시므로 자신의 내적일치와 공동체의 일치를 굳건히 하는 시간입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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