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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괴짜수녀일기] < 1 > “암, 수녀도 먹어야 살지” / 이호자 수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07 조회수911 추천수9 반대(0) 신고
   

  

 

                     “암, 수녀도 먹어야 살지”



   한동안 나는 우유를 참 많이 마셨다. 그건 위하수증 때문이기도 했다. 배고픈 신호가 왔다하면 즉시 뭔가 뱃속에 넣어주지 않으면 못 견디는 그 증세 덕분에 나는 우유를 물마시듯 해야 했다.


   오래 전, 농아자들을 위한 교육기관인 애화학교에서 유치부 수업을 할 때의 일이다. 꼬마 아이들을 앞에 앉혀놓고 말을 가르치다 보면, 배고플 때가 많았는데 그렇다고 자리를 비울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럴 때마다 신호를 보내면 아이들 간식을 준비해주는 일일당번 엄마가 우유를 갖다 주곤 했다.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날은 신호를 보냈는데도 도무지 소식이 없었다. 보아하니 그곳에 있는 아이들 몫까지 준비하느라 늦어지는 모양이었다. 새로 당번을 지원한 학부형이라 우리 학급 사정을 잘 몰랐던 것이다. 하여튼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도착한 우유를 꿀꺽꿀꺽 마시는데 한 아이가 대뜸 “왜 기도 안 해요?” 라고 하지 않는가. 아차 싶어 반쯤 마신 우유컵을 앞에 놓고 하얗게 우유자국이 나 있는 입을 닦지도 못한 채 성급히 성호를 그을 수밖에. ‘어떤 신부님이 천 원 이하의 음식을 먹을 때는 기도를 생략해도 괜찮다고 하셨는데….’


   언젠가 미국에 갔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식사시간에 ‘우유’를 주문했었다. 한 달 동안 미국 물먹은 영어실력(?)도 있고 해서 나름대로 유창하게 “뮤일-크”라고 했더니 스튜어디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폼이 영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이었다.


   급하면 무얼 못 할까. 낭패를 모면하겠다는 일념으로 과히 성능이 좋지 않은 내 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소의 젖이니 소는 ‘카우(Cow)’이고 ‘젖은 뭐지?’ 에라 모르겠다. 얼른 수화로 젖 짜는 흉내를 낼까? 에이, 안 먹고 말지.‘  결국 조금 후에 내 간이식탁에 놓인 것은 우유가 아니라 맥주였다. 붉어진 얼굴로 , 나는 옆 승객들이 볼세라 몇 모금밖에 마시지 못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그때 식사는 ’비프스테이크‘ 였으니 우유를 청하는 게 이상했던 모양이다.


   그날도 하루 종일 교육 연수를 받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갈아타는 전철역에서 내 뱃속이 시장기가 있다는 신호를 자꾸만 보내오기에 가두 판매대에서 우유를 하나 사서 마시고 있으려니 지나가던 남학생 몇이서 일부러 나 들으라는 투로 이렇게 말하고 지나갔다.


   “먹어야 산다.”

   “암 그렇지, 수녀도 먹어야 살지….”


       - 이호자 마지아 수녀(서울 포교 성 베네딕토 수녀회)/전 애화학교장(청각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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